[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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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간호장교로 참전한 것을) 후회는 안 합니다. 지금이라도 부르면 이제라도 가서 일할 것 같아요.”

18살에 6·25전쟁을 맞아 학업을 중단하고 간호장교로 참전한 박옥선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이 15일 오전 6시50분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신우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종로구지회측이 전했다. 향년 91세.

1932년 9월 서울 필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공립여중(6년제) 5학년이던 1950년 6·25를 경험했다.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9·28 수복 때 돌아와서 서울 서부훈육소(임시 학교)에서 공부할 때 간호사관학교 2기생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1951년 2기생으로 들어갔다. “피난 갈 때 논두렁에 쓰러져 죽은 피난민을 본 뒤 ‘내가 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죠”

외동딸의 참전을 막으려고 한 아버지(박술음, 1902∼1983, 前 사회부 장관)에게는 “1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떠났다. 뒤돌아서서 울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임종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훈련 도중 가까운 데서 수류탄이 터진 탓에 왼쪽 귀는 영영 듣지 못하게 됐다. 제주, 대구, 부산, 철원, 양구 등지에서 근무했다. “상처에 바를 빨간약(포비돈 요오드)도 없어서 감염을 막으려고 다친 부위보다 더 많은 부위를 절단”하는 나날이었다.

간호장교는 전쟁터에서 쉴 새 없이 밀어닥치는 환자 중 살릴 사람과 포기할 이를 구분해야 했다. 대구1육군병원에서 근무할 때 총알 때문에 안면이 함몰된 박종은 중위를 남들은 포기하자고 하는데도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치료해서 살려낸 일이 보람으로 남았다. 2014년 방송에 출연한 고인을 보고 박종은씨가 국방부에 문의한 덕분에 서울역 3층 제과점에서 재회하기도 했다.

휴전 후 국립원호병원(현 중앙보훈병원)에서 간호과장으로 베트남전쟁 부상병을 돌봤고, 그 후 삼척탄광 의무대에서도 일했다. 퇴직을 하고서는 2009년부터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을 맡아 지난 8월까지 10여년간 봉사했다. 여성이 지회장을 맡은 건 고인이 처음이었다. 방송 출연료를 아껴서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참전유공자를 도왔다. 2020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한편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여성은 약 2천400명에 이르는데 이 중 664명이 간호장교였다. 고인은 전쟁기념관 구술 인터뷰에서 “(간호장교로 참전한 것을) 후회는 안 합니다. 지금이라도 부르면 이제라도 가서 일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고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상주는 김영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종로지회장과 홍의준 현 6·25참전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이 맡았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17일 오전 11시, 장지 충남 부여 선영. 02-207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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