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공사 현장에서 마주하는 ‘안전 제일’. 건설사가 전하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자 신뢰의 다짐인 이 문구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빛바랜 거짓말이 돼 버렸다.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로 분류되는 부실시공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빈발하면서 우리 건설업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극도로 치달은 상태다. 이에 최근 발생한 주요 대형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더 나은 건설현장 문화 조성을 위한 대책이 무엇인지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붕괴 사고로 내려 앉은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현장. [사진=연합뉴스]
붕괴 사고로 내려 앉은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 현장.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설계단계부터 감리, 시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총체적 부실이 확인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 해당 아파트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에 대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1일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사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월 29일 인천 검단지구 AA13-1,2블록(인천 서구 원당동 일대)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의 붕괴 부분이 대부분이 무량판 구조조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량판 구조는 하중을 지탱하는 수평 기둥인 ‘보’ 없이 위층 수평 구조인 ‘슬래브’를 기둥이 지탱하도록 이뤄진 건물 구조다.

사고는 이 아파트 지하 1층과 지하 2층의 각 지붕층 슬래브가 무너지면서 일어났으며, 붕괴면적은 총 970㎡에 달한다.

무량판 구조는 보가 없는 만큼 층고를 높게 할 수 있지만 충격에 더 취약한 편이다. 부실공사 등으로 기둥과 슬래브 사이의 철근 정착에 문제가 생기면 전단파괴 현상이 발생해 기둥만 남고 각 층이 아래로 떨어져 연쇄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월 공사 중 붕괴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도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다.

이에 따라 사고조사위는 재발 방지 대책으로 해당 아파트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에 대해 특수구조 건축물에 포함하는 한편, 심의 절차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업계 일각에서는 기둥 부분의 슬래브에서 뚫림 현상 등의 붕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기둥이 무너지며 붕괴가 시작됐다면 전체적인 붕괴 형태가 지금과 같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하중을 받쳐줄 수 있는 구조물이 잘못 설계, 또는 시공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세로 자리 잡은 공법, 장점도 단점도 ‘극명’

무량판 구조의 사전적 정의는 하중을 지탱하는 수평 기둥인 보(beam) 없이 위층 수평 구조인 슬래브(slab)를 기둥이 지탱하도록 이루어진 건물 구조를 말하며, 평판바닥구조 또는 플랫 슬래브 구조라고도 한다. 여기서 슬래브와 보, 기둥이 있는 구조는 ‘라멘 구조’, 보와 기둥 없이 벽으로 슬래브를 지탱하는 구조는 ‘벽식 구조’라 한다.

본래 무량판 구조의 경우 교량 건설에 주로 사용돼 온 방식이다. 슬래브(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바닥)에 발생하는 하중이 곧바로 기둥을 통해 바닥에 전달돼 지반으로 내려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보를 설치하기 위해 50∼70㎝의 공간을 별도로 확보하지 않아도 되므로 층의 높이를 줄일 수 있으나 대신 두께가 두꺼운 슬래브가 필요하다. 특히 기둥 주위의 슬래브를 구멍내거나 절단하려는 힘이 크게 작용하므로 기둥 주변 슬래브를 보강해야 한다. 주로 철근콘크리트구조에 적용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철근콘크리트 자재의 품질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벽체가 기둥 역할을 해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인 벽식 구조가 많이 쓰였다.

그러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고 한 번 시공하면 벽체를 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에 더해 상부의 충격으로 인한 소음이 바로 벽으로 전달되는 특징으로 인해 다른 공법 대비 층간소음이 심하다는 문제점까지 나타나면서 새로운 공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진=삼표]
[사진=삼표]

반면 무량판 구조는 상부의 소음이 기둥을 통해 빠져나가 벽식 구조보다 소음이 덜하며, 내구성이 더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벽식 구조보다 시공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어 주로 백화점 등 판매시설이나 고층 상업용 빌딩에 활용됐으나, 층간소음과 내구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점차 아파트에도 무량판 구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례보다 지난 1995년 붕괴 사고로 전 국민을 공포와 좌절로 몰아넣은 삼풍백화점과 지난해 광주 화정아이파크가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공법의 한계? 설계·시공이 부른 ‘인재’

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현장. [사진=연합뉴스]
사고가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현장. [사진=연합뉴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보다 앞서 작년 1월 11일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역시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건물이다.

사고 당시 건물 23~38층 사이의 외벽과 구조물이 도미노처럼 연이어 무너져 내렸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설계 구조상의 취약성으로 인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당시 조사에 나선 국토교통부도 앞서 공동주택 시공 시 설치하는 ‘갱폼(외벽 거푸집)’이 무너지면서 외벽 등이 붕괴한 것이 화정아이파크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해당 공사에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갱폼을 유압으로 올리는 ‘레일 일체형 시스템(RCS)’ 공법이 사용됐는데, 이는 하층 2개 층이 무거운 시스템 폼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는 구조다. 그런데 하부 2개 층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상층을 쌓아 올리다가 갱폼이 무너졌고, 그 충격으로 하부층도 순차적으로 무너졌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기둥이나 벽을 최소화한 설계 구조가 사고 규모를 키웠을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된다.

1995년 6월 29일 붕괴한 서울 강남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량판 구조가 안전하려면 기둥이 많고 두꺼워야 하는데 당시 비용 절감을 위해 기둥의 수와 폭을 줄인 것인 사고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의 큰 판을 각 기둥이 무게를 분산해 지탱해야 하는데 이때 판과 기둥이 맞닿은 면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진다. 그렇기에 판이나 기둥 어느 하나라도 콘크리트 양생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거나, 철근 등의 골조가 적절하게 배치되지 않는다면 한 점에 가해지는 과도한 압력으로 인해 기둥 상부층에 구멍 형태로 붕괴가 발생하는 ‘펀칭전단’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삼풍백화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붕괴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내 지하주차장 상층부에서도 이 같은 전단 현상이 발견됐다.

이처럼 무량판 구조 자체는 명확한 장·단점을 지닌 공법이다. 안정성을 충분히 검증받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주요 공법 중 하나다.

문제는 정확한 설계대로 시공이 이뤄졌는지, 그 이전에 무량판 구조에 적합한 설계가 적용됐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2일 검단 지하 주차장 붕괴 현장을 찾아 “무량판이 수평 하중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모든 조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볼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 자체는 오랜 기간 활용돼 온 공법이다 보니 구조적인 문제로 보긴 어렵다. 시공과정에 독립된 검증절차와 전문가의 검사가 부재했기 때문에 사전에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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