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종효 기자] “라면과 같은 품목은 시장에서 업체와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해 나가야 한다. 정부가 개입해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소비자단체에서 적극 나서 견제하고 압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해당 발언이 나온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농심, 삼양, 오뚜기 등 주요 라면 제조업체는 라면 가격 인하 방침을 발표했다.

추 부총리의 한 마디에 식음료업계, 주류업계 등 유통업계 전반이 눈치를 보고 있다. 라면 다음은 어떤 분야가 언급될 지 긴장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상 정부가 나서서 가격 인하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이번에 국제 밀 가격 인하를 이유로 들어 라면 가격을 언급했지만, 그간 가격 인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해왔다는 불만이다.

추 부총리의 이번 발언은 지난해 9월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당시 추 부총리는 식품업계 등의 가격 인상을 두고 “민생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의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부당한 가격 인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담합 등 불공정행위 여부를 소관 부처와 공정위가 합동 점검하겠다”고 경고했다.

추 부총리는 원부자재 가격 폭등으로 인한 가격 인상과 담합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 밀 가격 인하를 가격 인하의 요인으로 제시한 반면, 원부자재 가격 인상을 가격 인상의 요인으로 고려하지 못한 발언이다. 심지어 기업들이 밀 계약을 통상적으로 짧게는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하고, 밀 가격 변동이 업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국제 밀 가격 인하를 가격 인하 요인으로 제시한 것은 업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올해 2월 추 부총리의 경고를 직격으로 받은 주류업계의 경우 소주 가격에서 약 15%를 차지하는 주정 가격이 지난해 7.8%, 올해 9.8% 인상되는 등 연속해서 불가피한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 부총리는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고, 기획재정부는 제조사의 주류 가격 인상 동향을 살펴보는 실태조사를, 공정거래위원회는 ‘민생 분야 담합 행위를 중점적으로 조사한다’는 방침을 발표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주류업계를 압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보여주기식’ 발언으로 인해 제조업체들이 모든 손해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고 토로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부가 효용성 있는 대책을 내놓기보다 기업을 압박해 가격 인상을 방어하는 것이 과연 본질적인 물가 안정 대책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이 봉이냐’는 말부터 ‘한국에서 기업 운영하기 힘들다’, 심지어는 ‘공산주의냐’는 발언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추 부총리는 “정부가 개입해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지만, 누가 봐도 지금 모양새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혹여 세무조사나 국정감사 대상이 될까봐 가격 인하 권고를 무조건 따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그야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있어. 너는 대답만 해) 정부다.

“소비자단체에서 적극 나서 견제하고 압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는 추 부총리의 발언은 아예 우군을 지정해서 선동하는 것처럼 들린다. 당초 자유경제주의를 표방하며 기업의 건전한 경쟁을 추구해 온 정부 방향이 민생을 방패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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