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전한울 기자] “외교는 국익이 최우선입니다.”

최근 굴욕외교 논란에 휩싸인 정부를 옹호하기 위해 여당 측이 일부 지자체에 설치한 ‘정치 현수막’ 슬로건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경기침체 국면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2019년, 일본 정부가 외교관계 악화 이후 시행한 ‘핵심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수출금지’ 조치를 해제한 측면에선 유의미한 성과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업황 속에서 특히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국내 소부장 생태계를 위한 중장기적 안목과 종합적인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외치면서도 정작 근간에 있는 소부장 업계는 보듬지 못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용인 메가 클러스터’ 조성과 일본의 ‘글로벌 탑티어’ 소부장 업체를 유치하려는 목적과 취지까지는 반박이 불가하다. 하지만 일본 기업을 무분별하게 유치함으로써 국내 경쟁력이 악화되는 시나리오는 고려 대상에서 배제한 모양새다.

이미 국내 소부장 업계는 지난해 대기업 발주율이 감소하면서 올해 실적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소부장 자립을 위한 ‘국산화’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대외 의존도는 꾸준히 줄어들었지만, 국산화율은 여전히 20% 내외에 불과하다.

업계는 일본 기업의 대거 상륙으로 수급이 안정화되면 국산화 기조도 자연스레 무력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 기업과 국내 기업의 기술 격차로 인해 인센티브가 아니면 승산이 없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특히 국가별 특화 분야를 기준으로 분담 체계가 구동된 과거와 달리, 여러 국제정세가 맞물린 최근의 산업·분담 경계는 매우 불안정하다. 이미 글로벌 소부장 업계에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된 점에 비춰볼 때, 국내 업계의 시장 입지는 한없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현재 국내 업체들에겐 일본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역량이 다소 뒤쳐진 중소 위주의 업계가 중장기 연구개발을 이행할 수 있는 다각적인 법제 지원이 절실한 때다.

‘반도체 허브’ 만을 외치며 무분별한 기업 유치에 나선 정부의 이번 전략은 역대 정권에서 미흡했던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에 지속적인 힘을 불어 넣겠다는 필승 전략와 상충되는 기조이기도 하다.

일본 기업의 사업범위를 명시하고 국내 업계와의 시너지를 모색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혹은 가드레일 조항이 시급한 이유다.

반도체 산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 전략산업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수년간 국제정세 리스크가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을 몸소 경험했다.

현 상황에서 공급망과 외교관계가 악화되는 돌발위기가 되돌아 온다면, 우리나라는 또 한번 ‘소부장 속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정부가 ‘굴욕외교’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선 국내 업계의 상생과 발전에 중점을 두고 중장기적인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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