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박예진 기자] “갭투자만큼 이상한 구조가 또 어디 있을까요.”

다음 달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 제한 해제에 대한 한 전문가의 말이다. 부동산 시세가 오를 때는 임대인만 이득을 얻고 하락장이 이어지면 임차인이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전세와 매매 가격의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임차인이 늘어나자 정부는 3월부터 전세퇴거자금대출 한도를 폐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반환 보증금 문제가 전세사기의 65%를 차지하는 만큼 정부 논리도 일리가 있다. 급격한 부동산 하락장에 자금 흐름을 놓쳐 졸지에 전세사기꾼이 된 임대인은 대출을 받아서라도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세사기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전세 보증금 대출한도 폐지가 향후 갭투자 판을 더 키울 수 있다. 전세 대출금이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됐던 지난 2년처럼 이번 정책 역시 투자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심각해진 데에는 정부의 대출 제도가 영향이 컸다. 2020년 이후 정부가 아파트 매매에 대한 대출규제를 심화하는 반면 전세대출에는 별다른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이는 돈 없는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받아오면 투자자들은 그 돈을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전세대출과 보증금이 집주인의 투자자금으로 활용되면서 지금과 같은 하락장에서 임차인만 손해를 보는 이상한 구조가 탄생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세와 매매가격의 차이가 적은 경우 갭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경기 평택, 화성시 등 수도권 외곽지역에선 갭투자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아실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후 최근 3개월간 경기 평택시에서는 무려 45건의 아파트 갭투자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매매가보다 비싸게 전세를 주는 이른바 마이너스 갭투자는 13건, 한 푼의 돈을 들이지 않은 무갭투자는 3건에 달했다.

지방권의 갭투자 거래량은 전국 시군구 집계에서 모두 상위권에 속했다. 천안시 서북구는 34건, 창원시 성산구는 32건, 경남 김해 30건 순으로 많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세 퇴거대출 한도가 폐지되면 이를 다시 투자비용으로 활용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보증금 반환이 어려우면 대출을 늘릴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집을 팔도록 하면 된다”며 “집을 계속 소유하면서 임대소득은 벌고 싶은 임대인에게, 정부가 나서서 공공지원을 하는 것은 투기꾼들의 숨통을 터주는 꼴”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갭투자가 발생하면 임대인과 돈을 빌려줬던 금융기관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지만, 전세대출을 받았던 임차인은 보증금 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미반환 보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출한도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보험 한도 확대와 금융권의 책임 있는 대출이 필요하다. 정부는 금융기관과 채무자 책임 분담형 대출제도 등을 도입해 금융 부문에서도 갭투자 리스크를 감소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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