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형 대한조선학회 회장
이신형 대한조선학회 회장

국내의 거의 모든 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한다는 공포에 빠져 있던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 조선산업은 대중국 우위를 되찾아오는 기개를 떨쳤다. 최근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환경규제의 시행을 앞두고 친환경 선박 수요의 증가와 글로벌 LNG 수요의 증가에 힘입어 추격 불허의 격차를 벌여 나가고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인가. 업계 전체에 인력난이 현실화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2일부터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지회)가 파업 중이다.

옥포조선소의 핵심시설인 1도크 진수작업이 전면 중단돼 선박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선‧후행 공정 또한 모두 중단된 상황으로 1도크에서1만2000여명의 근로자가 작업을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를 따져보면, 진수 중단으로 하루에 260억여원의 매출 감소와 60억여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매출과 고정비 손실만 지난달까지 2800억원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선박 인도가 제때 이뤄지지 못해 지난달 말 기준으로 약 52억 원의 지체보상금이 발생했고, 이달 말까지 260억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산업은 소량주문생산의 대표적인 산업이다. 주문을 주고 받는 선주와 조선사 간 신뢰의 바탕에는 납기시점이 있다. 납기시점에 차질없이 선박을 인도하는 일이야말로 발주자에 대한 조선사의 신뢰도를 높이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조선사의 향후 일감 확보에 결정적 요인이자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번 파업으로 인해 납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대우조선해양은 지연된 기간에 따라 많게는 수백억원의 지연배상금을 선주에게 지급해야 한다. 또한 선주의 신뢰를 잃게 되고, 이는 미래의 수주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위험으로 이어진다. 수주를 못하면 당연히 일감이 없어지고, 결국에는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선주가 한국을 떠올릴 때 파업으로 인한 납기 지연이 우려된다면, 대우조선해양뿐만 아니라 국내 조선사들에 대한 발주 자체를 꺼리거나 선가를 과도하게 깎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신뢰가 생명인 조선산업에서 납기 지연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파업은 근로자들의 임금손실로도 이어진다. 대우조선해양에는 현재 약 2만10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 중 사내협력사 근로자는 1만1000여명이다. 사내협력사 근로자 중 거통고지회에 400여명이 가입했고, 파업에는 12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노 갈등의 양상을 띠는 이번 파업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근로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파업기간 동안 일을 못하게 되면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생계유지에 곤란을 겪을 것이다.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보다 많은 수의 근로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빨리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나만 생각하며 우리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는 모습은 무섭기까지 하다. 상금을 받으려고 서로를 죽이다가 결국엔 모두 파멸하는 게 드라마 ‘오징어게임’이다.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멈춰야 한다.

이제는 숨을 고르고 ‘기브 앤 테이크’의 원칙으로 협상에 나서자. 조선사와 사내협력사, 그리고 근로자들 모두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파업 대신 대화를 해야 한다. 우선 점거 중인 1도크에서 철수해 선박 건조가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 사내협력사 대표들과 하청노조도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입장을 경청해야 한다. 자존심 싸움으로 빠지면 이성을 잃게 되고 그 끝은 공멸이다.

정부의 편중된 인력양성 기조에 따라 조선업계는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산인력의 부족으로 수주한 물량조차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우려되는 현재,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은 태풍급 먹구름이다. 열심히 풀무질을 해서 겨우 달궈진 쇳덩이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다. 노도 사도 서로를 죽이고 혼자만 살아보겠다는 ‘오징어게임’에서 탈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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