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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제덕과 안산.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최근 도쿄올림픽 5가지 세부 종목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을 향한 국민의 관심이 뜨겁다. 모두가 숨 죽인 경기장,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화살이 엑스텐(과녁의 한가운데)에 꽂힐 때의 희열은 숨통 막히는 무더위쯤 가볍게 날리는 속 시원함을 선사한다.

이렇듯 양궁이 4년마다 ‘국민 청량제’가 된 역사는 꽤 오래됐다. 올림픽에 양궁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 서울 올림픽부터 이번 2020 도쿄올림픽까지 단 한 차례도 놓치지 않고 금메달을 선물했다. 자그마치 연속 9번이다. 30년 넘게 9번의 대회에서 일 등을 지킨 것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서거원 대한양궁협회 전무는 ‘내부 무한경쟁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중요한 비결로 꼽는다. 30여 년 전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이 장악했던 양궁계에 뛰어들며 사활을 걸었던 투명한 경쟁 과정과 그 어떤 변화도 이겨낼 다양한 훈련법이 통했다는 것이다.

각계 전문가들도 ‘한국 양궁 신화’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무한 경쟁 시대 일등만이 생존하는 잔인한 생태계 속에서 한국 기업의 조직경영을 양궁에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변화에 강한 훈련법·공정한 선수 발탁, 기업 경영 전략과 통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 여자 양궁에서 기업 경영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특히 한국 양궁의 ‘철저한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 주목했다.

연구 보고서에선 “선수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 80위가 세계 랭킹 5위 정도의 실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 획득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이런 경쟁 메커니즘은 한국 양궁이 국제시장을 지배하는 비결 중 하나다. 한국 양궁은 여러 국가에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모델”이라고 평했다.

한국 양궁은 경쟁국들이 따라 배우는 동안에도 쉬지 않았다. 새로운 훈련방법과 기술을 개발해 시장 선도를 유지했다. 대회 경기방식이 하나 바뀌면 훈련 방식은 30여 가지가 추가되는 식이다.

보고서에서는 이런 한국 양궁의 시스템이, 시장을 지배해야만 살아남는 한국기업의 생존전략과도 잘 맞는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시장을 지배하고 표준을 선도해 ‘마켓 리더’가 돼야 하며, 경쟁자들이 벤치마킹을 하도록 그들을 추종자 포지션(follower position)에 머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통하여 시장 선도적 포지션(leader position)을 유지해나가면 위험할 요소가 줄어든다. 그러려면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도 위협받지 않는 핵심역량을 갖춰야 하며, 치열한 경쟁, 실전 대비 훈련 등을 통해 강력한 핵심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서에서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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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 지난달 30일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목을 걸고 시상대를 나오던 중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축하를 받자 눈물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외에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양궁과 기업경영의 절차적 공정성을 연결 지었다. 한국 양궁의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절차적 공정성’으로 봤다. 절차적 공정성을 통해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목표 달성 가능성을 올린다는 주장이다.

기업 역시 절차적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블라인드 채용’(채용 과정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지원서에 출신 학교, 지역, 가족관계 등을 기재하지 않는 방식)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재벌 총수 일가 자녀 특채 등 관행은 여전히 남아있는 문제점이다. 기업 경영에서의 절차적 공정성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 후원하고 보답하며 빼닮아간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 양궁


한편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금빛 질주를 이어가는 동안 이들과 꼭 닮은 조직경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현대자동차그룹’도 함께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 최고가 된 뒤에는 대한양궁협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한다. 대한양궁협회장이 바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본격적인 후원은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인 1984년부터다. 이후 40년 가까이 이어온 후원금액만 500억원으로 알려졌다.

중요한 점은 물심양면으로 한국 양궁을 도와온 현대차그룹이 한국 양궁의 시스템을 빼닮아간다는 것이다. 기업과 스포츠 등 성격이 다른 분야여도 성공전략은 통한다는 통설이 한국 양궁과 현대차그룹으로 증명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십년 전 아시아의 작은 자동차 기업에서 세계 5위권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한국 양궁은 여러 국가가 벤치마킹하는 최강국이 됐다.

한국 양궁이 다양한 훈련법에 제일 먼저 나서듯, 현대차그룹도 세계 최초로 수소 전기차 ‘넥쏘’를 만들었다. 최근 정의선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미래 모빌리티 사업 투자를 발 빠르게 모색하기도 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부딪히는 돌파 방식에서 한국 양궁과 현대차그룹은 닮아 있다.

인재를 챙기는 과정도 비슷하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9년 직급과 호칭 체계를 축소 통합하고 승진연차 제도를 없앴다. 능력을 갖추면 바로 상위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고, 나이에 관계없이 임원이 되기도 한다.

우연일까. 한국 양궁이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며 세계 정상에 선 며칠 전인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한국인 최초로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역대 수상자 포드 창립자 헨리 포드,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 벤츠 창립자 칼 벤츠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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