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폴 등 마약류 의약품 오·남용과 관련한 사건·사고는 우리 사회의 꾸준한 가십거리 중 하나이다. 의약품을 현장에서 처방하고 사용할 수 있는 최종 결정권자가 의사들이다보니 의료인들이 그런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에서 진행했던 사례 중 프로포폴 관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마약류취급업자인 의사가 원내 프로포폴 관리를 소홀히 해 이를 남용한 간호조무사가 사망한 사례이다.

의사 A는 원내의 간호조무사 B가 프로포폴과 디아제팜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프로포폴과 디아제팜을 처방했고, 정맥주사를 통해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하는 것을 묵인했다.

문제는 의사 A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발생했다. B가 업무가 종료된 후에 병원에 혼자 남아 있다가 임의로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B는 간호조무사임에도 향정신성의약품 금고 열쇠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에 A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의료법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기소를 당하게 됐다.

◇재판 과정에서의 공방 및 그 결과=이 사건에서 A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의료법을 위반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평소에 B가 마약류 의약품을 투여하는데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 법무법인에서는 적어도 업무상과실치사에 대해서는 다툴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의사 A가 퇴근한 이후에 발생한 사망이라는 결과까지 A에게 관리소홀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먼저, 망인 B의 부검 결과 사체에서 검출된 프로포폴이나 디아제팜의 혈중 함량은 독성농도 또는 치사농도에 해당하지 않았고 적절한 치료농도 범위에 있었다는 점, 사인은 프로포폴의 부작용 중 하나인 호흡부전으로 밝혀진 바, A의 관리 과실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볼수 없다는 점, 프로포폴의 제거반감기인 4~7 시간을 고려하면 체내에 프로포폴이 잔류하지 않은 상황에서 B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 그밖에 프로포폴이나 디아제팜이 사망의 직접 원인이라는 점 등에 착안했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주장했다.

그 결과, 원심에서는 업무상과실치사를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지만, 항소심(의정부지방법원 2016노551 판결)에서는 A의 업무상과실치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업무상과실치사의 유·무죄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중요한 판결이 아닐 수 없었다.

◇시사점=의료기관에서의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를 소홀이 할 경우 그 자체가 의료법령 위반이 돼 처벌과 처분의 대상이 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서 소개한 사례와 같이 심각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A원장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의 죄책은 피해갈 수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받은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했다.

향정신성의약품 관리에 관해서는 의료법령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원내 프로세스를 구축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승준 변호사 약력>

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

이화여자대학교 로스쿨 외래교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의료, 스포츠)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