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사진=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사진=넷플릭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미국의 재벌이자 TV스타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판타지에 가까웠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미국 인기 TV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바트가 상상한 ‘끔찍한 미래상’에서나 등장할 법한 발상이다. 

2016년 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을 앞두고 격돌했을 때도 트럼프의 당선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마치 천지가 개벽하듯 당시 미국 대선은 요동 쳤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SF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3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트럼프 시대’는 4년 만에 막 내리게 됐다. 이런 시점에서 개봉한 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르다. 

PC주의 속에서 인종의 다양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찾는 사이 ‘트럼프 지지층’에 해당하는 백인 빈곤층의 삶을 엿보는 일은 미국 사회가 놓친 것은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이는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으며 한국 관객에게도 사회 속 잊힐 수 있는 계층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의 법조인이자 벤처사업가인 J.D.밴스가 2016년 출간한 자서전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출간 직후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국내에서도 많은 저명인사들이 추천도서로 언급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J.D.밴스는 미국의 몰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강 도시 미들타운에서 자라 예일대 법대에 진학했다. 자서전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예일대에 진학한 후 로펌 인턴십에 지원하기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J.D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미혼모인 어머니 베브(에이미 아담스)는 홀로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와 J.D.(가브리엘 바쏘)를 키웠다. 외할머니(글렌 클로즈)와 외할아버지(보 홉킨스)는 10대 시절 혼전임신을 해 집에서 도망쳐 가정을 꾸렸다. 

베브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고 어머니가 아버지의 등에 불을 붙이는 폭력을 보며 자랐다. 베브 역시 아이들이 안정된 집에서 살길 바라는 마음에 여러 남자를 만나지만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집안의 장녀인 린지는 어머니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폭력에 시달리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성공한 사업가 J.D.밴스가 자신을 키운 것은 외할머니와 어머니, 누나의 희생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족드라마와 별개로 이 영화는 원작소설과 함께 ‘트럼프 지지층이 어떻게 탄생했나’를 보여주고 있다. 

'힐빌리의 노래'. [사진=넷플릭스]
'힐빌리의 노래'. [사진=넷플릭스]

실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하게 한 것은 미국 내 백인 빈곤층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내에서 유색인종과 소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사이 백인 중에서도 소외된 러스트 벨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라 믿고 그를 지지하게 된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가난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들었다. 실제 영화에 등장하는 일부 에피소드에서는 가난해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불편함을 고스란히 다루고 있다. 책에서는 영화보다 더 신랄하게 빈곤층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오하이오에서의 어린 시절뿐 아니라 예일대에 진학한 후에도 J.D.의 가난은 끝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상류층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없던 탓에 식사예절을 배우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부터 어머니의 치료비를 내기 위해 카드 4개를 나눠서 내야 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영화 속 J.D.의 유년기와 대학시절은 각각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인 시대다. 두 사람은 모두 민주당 대통령이다. 이 같은 배경은 핵심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민주당 시대에 보지 못한 허점을 이야기한다는 해석을 낳는 계기가 된다. 

실제 J.D.밴스는 미국 내 개혁보수주의의 기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 내 좌편향적 경제·사회 정책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자유지상주의 속 시장이 제 역할을 못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는 진보성향의 민주당과 트럼프의 자유지상주의 모두를 지적하고 있다. 

J.D.밴스는 정부가 나서서 가족과 같은 문화공동체의 붕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가난과 폭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보호 장치이기 때문이다. J.D.밴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힐빌리들의 마약”이라고 지적하며 기존 보수주의와 선을 그었다. 

J.D.밴스의 이 같은 생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본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마더’에서도 이 같은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마더’는 2014년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조부모 살인사건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당시 범인은 17세 소년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어머니, 어린 여동생과 살다가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최소한의 울타리인 가족이 붕괴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에서도 가난으로 가정이 붕괴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드문 경우에 이런 사건은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진보성향이 강한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보수적 목소리를 낸다는 점과 원작 책에 비해 가볍게 이야기됐다는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1일 극장 개봉 후 “가족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만큼 키워준 어머니께 감사한다” 등 좋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힐빌리의 노래’는 넷플릭스 영화 중 처음으로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에서 일제히 개봉했다. 24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 서비스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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