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영화들이 자취를 감춘 극장가에서 여성감독이 연출해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 영화들이 눈에 띄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내가 죽던 날', '애비규환', '걸후드'.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리틀빅픽쳐스, 영화특별시SMC]
대작 영화들이 자취를 감춘 극장가에서 여성감독이 연출해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 영화들이 눈에 띄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내가 죽던 날', '애비규환', '걸후드'.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리틀빅픽쳐스, 영화특별시SMC]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인기 개봉작들이 자취를 감춘 극장가에 여성중심 서사의 영화가 연이어 등장하면서 극장의 ‘벡델 테스트’ 지수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미국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연재만화 ‘주목할 만한 레즈들’에서 고안한 지수로 영화를 포함한 창작물의 성평등 지수를 평가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평가 방식은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둘 이상 등장할 것 △여성들이 서로 대화할 것 △이야기의 주제가 남자에 대한 것 이외일 것 등이다. 

이는 개별 작품에 한해 테스트하는 방식이지만 최근 극장가에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만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극장가 전체에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극장가에서는 예매율 1위 영화 ‘도굴’을 제외한다면 여성중심 서사의 영화들이 다수 눈에 띈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2일 기준 133만 관객을 동원하며 코로나19 시국에도 선방하고 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배경으로 고졸 말단 여직원 3명이 회사의 비리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주연을 맡은 고아성, 이솜, 박혜수 외에도 동료 여직원들이 등장해 ‘약자의 반란’으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12일 개봉한 김혜수 주연 영화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기고 사라진 소녀를 추적하는 영화로 김혜수 외에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등이 출연한다. 김혜수는 외딴 섬마을에서 소녀가 간직한 비밀을 추적하는 형사를 연기하며 여성들만의 스릴러를 구현해낸다. 

같은 날 개봉한 크리스탈, 장혜진 주연 영화 ‘애비규환’은 혼전임신을 한 주인공이 사라진 아이 아빠를 찾는 내용으로 벡델 테스트 통과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임신을 소재로 담백한 가족 소동극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한국영화뿐 아니라 외국영화 역시 여성중심 영화가 눈에 띈다. 12일 개봉한 영화 ‘걸후드’는 파리 외곽에 사는 16살 소녀 마리엠이 친구들과 만나며 자아를 발견하는 이야기다. 올해 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국내 여성 관객들의 높은 지지를 얻은 셀린 시아마 감독이 2014년 만든 영화로 감독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자 뒤늦게 국내에 첫 선을 보인다. 

5일 개봉한 영화 ‘패뷸러스’는 SNS에 익숙한 20대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동시대 여성들의 관심사를 소소하고 유쾌하게 다루면서도 각자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패뷸러스’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그 해 관객상까지 수상했다. 

11일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미국의 젊은 벤처사업가 J.D.밴스의 자서전을 영화화했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J.D.밴스를 키운 할머니와 어머니, 누나의 이야기다. 영화에서도 J.D. 본인의 성공을 가족의 희생과 노력으로 돌리고 있어 감동을 자아낸다. 

다만 실존인물 J.D.밴스는 현재 미국 내에서 보수주의적 목소리를 내는 정계 유망주로 꼽히고 있고 영화 역시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인 백인 빈곤층에 대한 변명으로 읽힐 수 있어 현재 미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상황이나 문화와 무관한 한국에서는 가난을 극복한 가족 감동실화로 평가돼 개봉 직후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안티고네'는 주인공 안티고네의 신념에 찬 행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그린나래미디어]
18일 개봉하는 영화 '안티고네'는 주인공 안티고네의 신념에 찬 행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그린나래미디어]

개봉을 앞둔 영화들 중에서도 여성 중심 영화가 눈에 띈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는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요가학원을 찾았다가 끔찍한 일을 겪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시 ‘벡델 테스트’를 한다면 만족스런 결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지만 여성 배우들로 채워진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안티고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오빠 대신 감옥으로 간 주인공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고난을 헤쳐 나가는 여성과 그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PC주의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세계 영화시장에서 성별과 인종, 계층에 대한 다양성을 찾는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단순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그치지 않고 진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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