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트로이']
[사진=영화 '트로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집에서 75인치 UHD로 감상하는 시대가 됐지만 영화관이란 공간이 주는 특별한 경험까지 가져오지는 못한다. 좋은 영화를 제 때 극장에서 즐길 수 있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주에 개봉하는 신작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이뉴스투데이 이지혜 기자] 이달 초 재개봉한 영화 ‘트로이 디렉터스 컷’을 보고 직관적으로 혹은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3가지 포인트를 짚어본다.

①트로이 전쟁 참전 10만명은 대군인가? 스펙터클한가?

첫 장면에서 대규모 군대가 대치한 광경으로 시작할 때와 무수한 그리스 군함이 트로이 앞바다(에게해·다르다넬스해협)를 가득 메운 장면을 보여줄 때 ‘이런 영화는 역시 대형 스크린으로 봐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사진=영화 '트로이']
[사진=영화 '트로이']

하지만 잠시 후 아가멤논이 “헬레나 반환과 복속을 맹세하지 않으면 5만군과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적벽대전은 조조 100만 대군 아니었던가?’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호메로스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신들이 전쟁에 개입하는 형태로 쓰이어진 중국소설 ‘봉신연의’ 속 목우전투 역시 역사서 ‘사기’에 따르면 은나라 70만명, 주나라 40만명 규모다.

‘트로이’ 영화 소개를 찾아보니 ‘10만 대군이 참전한 사상 최대의 격전’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팩트 체크를 하겠다는 의도로 이런 사실을 나열한 것은 아니고, 그만큼 ‘트로이’ 영화 화면 속 5만명 그리스 군대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졌고, 찾아보니 100척으로 기록돼 있는 군함도 대형 스크린 덕분에 한층 웅장한 규모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파리스와 헬레나. [사진=영화 '트로이']
파리스와 헬레네. [사진=영화 '트로이']

②원작 소설과 참 많이 다른 영화 줄거리는 왜?

흔히 명작일수록 원작소설만 못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며, 하물며 이야기를 훼손하는 것이 대역죄 취급을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일리아스’는 소설을 통독하지 않았다고 해도 내용만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소설 ‘일리아스’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이러하다. 아카이아는 전리품으로 두 미녀 브리세이스와 크리세이스를 데려오고, 각각 아킬레스와 아가멤논이 차지한다. 이 때 아폴론신이 개입해 크리세이스를 돌려주게 되자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빼앗고, 이로 인해 분노한 아킬레스가 트로이전쟁에서 빠지게 된다.

헥토르와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헥토르와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보낸 황금사과’ 불화 때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메넬라오스 왕비 헬레네를 빼앗아 주면서 촉발된 전쟁이다. 황금사과 불화로 인해 분노한 헤라와 아테네는 아카이아 편을 들기 때문에 이 전쟁은 신들 개입으로 끝없는 반전이 일어난다.) 그 신의 개입이라는 정도가 파리스가 메넬라오스랑 싸우다 죽을 뻔한 순간 아프로디테가 순간이동을 시켜 살려준다는 식이다. 헬레네는 이러한 파리스에게 실망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남 메넬라오스왕에게 돌아간다.

양상이 아카이아에 불리하게 돌아갈 무렵, 페트로클루스가 친구 아킬레스 갑옷을 입고 나가 싸우다가 헥토르에게 죽는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스가 다시 참전하고 헥토르와 결투해 죽이고, 트로이왕 프리아모스는 적군 한복판까지 찾아가 아들 시신을 찾아와 장례식을 치른다. 일리아스는 10년 전쟁을 50일간으로 기술해 여기서 끝낸다.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아킬레스가 죽는 이야기는 없다.

헥토르와 파리스. [사진=영화 '트로이']
헥토르와 파리스. [사진=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에서는 신 이름이 언급은 되지만 개입이 일체 빠져 있다. 파리스(올랜도 블룸)가 헬레네(다이앤 크루거)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도망가버리자,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다. 트로이 해변에 도착한 후 아킬레스(브래드 피트)는 왕족 브리세이스(로즈 번)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하고 빼앗기자 분노해 전쟁에서 빠지기로 한다.

첫 전투에서 헥토르(에릭 바나) 활약으로 그리스군대는 크게 패하고, 아킬레스는 브리세이스를 구해내 사랑에 빠지고 귀국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하지만 동생 페트로클루스(가렛 헤드룬드)가 자기 대신 나가 싸우다 죽자 헥토르와 결투하고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 프리아모스(피터 오툴)가 찾아온 날 브리세이스도 돌려보내지만, 트로이목마로 인해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브리세이스를 구하러 트로이목마에 숨어 성으로 잠입한다. 아비규환 속에 브리세이스를 찾아내지만 파리스 화살을 맞고 죽는다.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③2000년대 이후 성인이 된 밀레니얼세대 관객은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가?

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를 꼽자면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신들이 막장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킬레스와 헥토르는 공통적으로 신의 뜻보다는 전장에서 싸우는 인간(군인)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예의 파리스와 메넬라오스 결투 장면에서도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하는 것은 국가적 체면보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동생을 구하는게 더 중요한 헥토르다.  이 형제를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헬레네를 빼놓지 않은 연출도 매력적이다. 

아울러 2004년 극장판 버전을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기억에 따르면 전쟁영화에서 필연적이듯 눈에 딱히 들어오지 않았던 로맨스 디테일이 디렉터스 컷에서는 사뭇 개연성이 뚜렷해졌다는 인상이다. 파리스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 몰래 죽음을 각오하고 나가겠다는 헬레네와 소설과 달리 트로이목마로 잠입해 브리세이스를 구하러 달려가는 아킬레스가 납득이 갔다.

다시금 이러한 각색 때문에 최근 중국 드라마 관련 댓글에서 눈에 띈 대목을 떠올리게 됐다. 이른바 고장극이라 불리는 황제가 나오는 드라마에는 황후와 후궁을 비롯해 아내가 여럿 등장하게 마련이다.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주인공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고, 이들은 대체로 밀레니얼세대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이러한 21세기 감성에 맞춰 역사적 사실 또는 픽션이라도 그 시대적 분위기를 왜곡해 보여줘야 할까?

트로이 목마.  [사진=영화 '트로이']
트로이 목마. [사진=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는 브리세이스(미녀→트로이 왕족)와 페트로클루스(친구→동생)의 인물 설정 자체가 바뀐 것을 비롯해, 이야기마저 대폭 원작을 변형했다. 일례로 아킬레스가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화살을 모두 뽑고, 발뒤꿈치에 맞은 화살만 1개 남아 군사들 목격으로 이어졌고 신화가 탄생했다는 식으로 합리성을 연출했다. 신이 개입해 모든 이야기 전개가 진행됐던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크게 변형하더라도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이 시대 영화적 허용’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10~30대를 타깃으로 한 중국 사극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는 현상이며, 관객 사고 변화가 앞으로 영화·드라마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아킬레스. [사진=영화 '트로이']
헥토르.  [사진=영화 '트로이']
헥토르. [사진=영화 '트로이']
파리스.  [사진=영화 '트로이']
파리스. [사진=영화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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