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로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해외 세일즈를 담당했던 콘텐츠판다의 상영금지가처분신청으로 공개가 보류됐다. 사진은 영화 '사냥의 시간', [사진=넷플릭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코로나19로 국내 영화 산업이 사실상 붕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영화 배급·상영 시스템에도 변화가 불어닥치고 있다. 기존 2차 판권 시장으로 분류됐던 OTT와 VOD 서비스와 1차 판권이었던 극장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앞으로 극장과 OTT·VOD 시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극장과 OTT의 경계가 무너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영화 ‘사냥의 시간’이다. 당초 2월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개봉을 연기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냥의 시간’ 제작사 리틀빅픽쳐스는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겼다. 

극장 개봉을 예정한 영화가 넷플릭스에 판매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영화들이 상영 플랫폼을 다변화 할 수 있는 선례가 될 전망이다. 

다만 ‘사냥의 시간’은 현재 넷플릭스 개봉에서도 진통을 겪고 있다. 영화의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콘텐츠판다가 리틀빅픽쳐스의 이중계약을 지적하며 8일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콘텐츠판다 측은 “이미 일부 국가에 세일즈가 완료된 영화를 아무런 통보없이 넷플릭스에 판매한 것은 명백한 이중계약”이라며 “세계 각국 영화사들을 피해자로 만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리틀빅픽쳐스 측은 “계약 해지 전 사전에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이 콘텐츠판다가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당초 예정된 10일 공개도 불투명해졌다. ‘사냥의 시간’의 판권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10일 공개를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법정공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면 영화 제작과 상영 사이에 새로운 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영화인들은 멀티플렉스를 대상으로 독과점 논란을 끊임없이 제기한 바 있다. 지난해 ‘어벤져스:엔드게임’과 ‘기생충’, ‘알라딘’ 등에 이같은 논란이 있었으며 대작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성수기 극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제작·배급사에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 플랫폼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OTT는 모바일 이용이 쉽고 비용이 저렴해 IPTV나 VOD보다 보급이 빠르다. 

또 전 세계에 서비스하는 넷플릭스 특성상 단기간에 큰 파급력을 낼 수 있다는 특징도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냥의 시간’이 성공적으로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경우 이 같은 행보를 택하는 영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CGV는 지난달 28일 일부 지점을 폐쇄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문을 닫은 CGV 명동. [사진=연합뉴스]

이밖에 VOD로 공개됐다가 극장으로 역주행하는 영화도 생겼다. 한국영화 ‘공수도’는 지난달 초 극장 개봉 없이 올레tv를 통해 공개됐다가 개봉 후 20여일만에 CGV에 개봉했다. CGV 측에서도 그동안 2~3건 밖에 없다고 언급한 이례적인 경우다.

CGV 관계자는 “IPTV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극장을 열어준 것”이라고 말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상영작 수급이 어려워진 이유만은 아니다”라고 말해 코로나19 영향이 없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2018년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데이 오브 더 데드:블러드라인’도 ‘시체들의 새벽:컨테이전’으로 제목을 바꿔 9일 극장 개봉했다. 공개된 지 무려 2년이 지난 영화가 극장에 걸린 이례적인 경우다. 역시 코로나19로 영화 수급이 어려워진 극장가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고육지책에도 불구하고 극장가에 관객수가 급감하면서 극장과 VOD 동시 공개를 택한 영화도 있다. 그동안 종종 있었던 사례지만 헐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이 이같은 전략을 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드림웍스가 제작한 영화 ‘트롤: 월드투어’는 29일 극장과 VOD로 동시에 공개된다. 2017년 개봉한 전작 ‘트롤’은 개봉 당시 67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어린이 애니메이션 중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히 이번 속편에서는 레드벨벳 웬디와 SF9 로운이 목소리 더빙으로 참여해 아이돌 팬들의 관심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동시 공개를 택한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일일 관객수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개봉 영화들이 최대한 수익을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일 기준 국내 극장가 총 관객수는 1만863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될 경우 OTT·VOD와 극장의 경계는 점차 옅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면서 OTT와 VOD 서비스 이용이 늘었다. 사태가 진정된 이후 극장 관객은 회복세에 접어들겠지만 그와 동시에 OTT 이용자도 늘어난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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