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원회 1차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1차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출범한지 한달이 조금 지난 가운데 7인 위원 중 1명이 사임했다. 여기에 재계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당초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24일 위원회에 따르면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지난주 위원회에서 사임했다. 이에 따라 23일 오픈한 위원회 홈페이지에는 권태선 공동대표를 제외한 6인의 위원 이름만 올라있다. 

위원회 측에 따르면 권 공동대표는 환경운동연합 내부에서 위원회 활동에 대한 이견이 생기면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위원회는 법조계 2명, 학계 2명, 시민단체 2명, 회사 측 1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과 함께 시민단체 대표였던 권 공동대표가 빠진 셈이다. 위원회는 다음달 2일 열리는 4차 회의에서 위원 충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밖에 위원회의 최근 활동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위원회는 11일 준법감시 협약을 맺은 삼성 주요 계열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권고문을 보내 경영 승계 과정 중 불법행위와 노조, 시민사회와 소통 등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가 30일 안에 답을 달라고 한 만큼 다음달 11일까지 이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준법감시위원회의 설립 취지를 살펴보면 법 위반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모니터링하고 예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안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이에 부합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현재 코로나19로 국가와 기업이 위기인 상황에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 위원회의 요구는 발목을 잡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구미와 화성사업장을 잇따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다만 김지형 위원장이 출범 당시 공개한 운영 기본원칙에는 “계열사 이사회나 경영위원회의 주요 의결이나 심의사항에 법을 위반할 위험요인이 없는지 사전 모니터링이나 사후 검토를 하겠다”고 언급돼있다. 

또 “법 위반 위험요인을 인지하게 될 경우 이에 관해 적절한 방식으로 조사 및 보고를 시행하고 이에 따라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시정 및 제재 요구 등의 조치를 강구하며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같은 원칙을 근거로 이 부회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권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부회장 측이 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원회 설립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직접 김지형 변호사를 만나 요구할 정도로 의지를 드러냈다. 또 위원회의 실효성이 보장되는 것이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양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위원회의 권고를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재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홈페이지 캡쳐.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2006년 설립됐던 삼지모(삼성을 지켜보는 모임)를 떠올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지모는 2006년 2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이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출범됐다. 외부 자문기관인 삼지모는 사회 각 층의 인사가 모여 삼성의 경영활동에 대한 ‘쓴소리’를 하는 역할을 했다. 

설립 당시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과 신인령 당시 이화여대 총장,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이정자 당시 녹색미래 대표, 최열 당시 환경재단 대표, 최학래 전 한겨례신문 사장, 황지우 당시 한국예술종합대학 총장 등이 참여했다. 

삼지모는 이들 8명으로 출범했지만 이후 안병영 전 부총리와 이정자 전 녹색미래 대표 등이 사퇴하면서 6명이 남았다. 

나중에 합류한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2006년 9월 연구 휴식년을 맞아 미국 버클리대로 떠나면서 1년 동안 참석하지 못했다. 안 전 부총리는 지난해 2월 연세대 교수에서 퇴임하면서 사퇴했다. 이정자 전 녹색미래 대표는 창조한국당 공동대표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삼지모는 당시 삼성 전략기획위원회와 정기 만남을 통해 그룹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전략기획위원회는 이학수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장충기 당시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이 간사를 맡았다. 

삼지모는 2007년 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계좌를 폭로하면서 삼성과 갈등을 겪었다. 당시 이학수 부회장은 삼지모와 만나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삼지모 측은 “삼성의 들러리라는 오명까지 쓰면서 합류했는데 우리까지 속였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위원회가 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권고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삼지모와 차이가 크지 않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삼지모’는 사실상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의 방패막이나 들러리 역할을 했고, 삼지모 스스로도 삼성이 우리까지 속였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며 “상법상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는 준법위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삼지모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에 따른 쇄신안 차원에서 설립됐으며 위원회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중 설립됐다. 이 때문에 삼지모는 ‘삼성의 들러리’, 위원회는 ‘이 부회장 양형 협상카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이 부회장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위원회의 실효성을 검토해 양형에 반영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특검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냈다. 이에 따라 1월 중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재판은 장기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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