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공항북로 해안가를 청소하고 있는 조상희 단장과 김원정 이사
인천공항 공항북로 해안가를 청소하고 있는 조상희 단장과 김원정 이사 [사진=김원종]

[이뉴스투데이 경인취재본부 신윤철 기자] 부산, 울산, 강원도화진포, 인천, 태안, 남해, 부산, 제주도 등 전국 해안가를 돌며 지금은 인천 공항북로 해안가에서 페트병,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모든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있는 UDT 자원 봉사단 조상희 단장, 그는 오늘도 동료(만61세 김원종) 한 분과 함께 해안가를 청소하고 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바닷가에서 총 25.682포대의 거대한 쓰레기 청소를 했지만, “걸을 수 있는 한 묵묵히 소리 없이 하고 싶다”는 조상희 단장을 만났다.

2012년 7월 수중 작업 중 절단되었던 팔을 보여주고 있는 조상희 단장
2012년 7월 수중 작업 중 절단되었던 팔을 보여주고 있는 조상희 단장[사진=김원종]

Q. 단장님은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해안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특별한 사연이 있을까요?

 1977년 해군 UDT(Underwater Demoliion Team,수중폭파대)를 제대한 저는 수중 건설현장에서 극도로 전문성을 요구하는 폭파작업 전문 베테랑 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2012년 7월),경남 통영에서 수중작업 중 순식간에 샌드펌프(수중의 토사를 빨아들이는 펌프)에 오른팔이 빨려 들어가 손목 위까지 찢기는 사고를 당했지요.

오른쪽 손목 위 6.5cm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회복했지만, 장애에 대한 절망감과 통증은 온전한 삶을 지속하기에는 너무 어려웠죠.. 프레스 기계에 의한 사고와 달리 근육, 인대 등이 샌드펌프에 찢겨진 경우는 그 통증이 평생 줄어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소 긍정적인 마음으로 삶을 살아온 저는 고통을 잊기 위해 병원에서 안내봉사에 나섰고, 그 이후 무료급식소 봉사 등을 거쳐 2014년 2월 부산에서 바다를 살리자는 뜻을 같이 한 UDT대원과 시민 등이 모여 ‘UDT 자원 봉사단-바다 살리기 운동 본부’를 설립, 2020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2015년 이후부터는 혼자 봉사활동을 진행해 왔으며, 아무런 비용 지원없이 지금까지 개인비용으로 약 7천 5백만원 정도 지출한 것 같습니다

  해안가 쓰레기 수거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군에 입대한 뒤로 바다와 쭉 관계를 맺어온 탓인 것 같습니다.

2014년 부터 지금 까지 총 25682 포대 수거함
2014년 부터 지금 까지 총 25682 포대 수거함[사진=김원종]

Q. 구체적으로 봉사 활동을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집집마다 한 가구씩 나와 마을 청소, 진입로 등을 복구하는 새마을사업을 보며 자랐지요. 이에 ‘내 집 앞부터 깨끗하게 치우자’는 마음을 가지며 살아왔고, 이러한 마음으로 전국 해안가를 돌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을 시작으로 울산, 강원도화진포까지 동해로 올라갔고, 다시 인천부터 태안을 거쳐 서해안과 남해를 거쳐 부산에 도착, 부산 해안가 청소를 마무리 한 후 제주도로 들어가 150일간 우도를 비롯해 비양도, 가파도, 마라도 등에서 5,903포대의 쓰레기를 수거했지요.

 쓰레기 수거량을 본다면,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 500포대, 원신동 850포대, 홍도동 300포대, 인천송도 1500포대, 인천 영종도 1,600포대, 완도 약산면 250포대, 완도 청산도 200포대, 제주도 5,903포대, 부산 이기대 7,000포대, 부산 사하구 물운대 300포대, 영덕군 461포대, 울진군 560포대, 2020년 2월 4일 현재 총 25,682포대 쓰레기 수거 및 처리를  완료 했습니다.

2010년 천안함 침몰당시 인명구조봉사에 참여했던 조상희 단장 모습
2010년 천안함 침몰당시 인명구조봉사에 참여했던 조상희 단장 모습[사진=김원종]

Q. 동료이신 김원중님이 바라보시는 조상희 단장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조상희 단장님은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시에 UDT 중앙협회에 계셨으며, 그 때에도 바로 인명구조 자원 봉사에 참여 하셨었죠.

 사실 저는 미국에 본관이 있는 세계특공무술연맹과 영화사 대외협력이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묵묵히 혼자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단장님을 현장에서 보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시간 될 때마다, 작은 힘 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본 단장님은 정말 변함이 없으시고, 본인의 아픔도 있으셨지만, 무언가를 바라고 봉사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아무도 개인적으로는 하지 않는 봉사활동을 8년간, 그리고 평생 하신다고, 하신 말씀은 누구도 그리 쉽게 이야기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Q. 단장님 앞으로 언제까지 하실 계획이신지요?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봉사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제 사비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 힘이 듭니다만 쓰레기를 담을 포대 정도만이라도 지원을 받는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신다면, 저로서는 지금까지도 육체적으로는 쉽지 않지만, 큰 보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나이 벌써 67세, 아직은 오른손 빼고는 정정하니, 더욱더 열심히 해야 겠습니다.

 자연의 보존은 인류의 미래 자산입니다.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선대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쓰레기 더미에 삶을 묻고 사는 조상희 단장의 노란 유니폼이 그렇게 눈부시게 보일 수가 없어 기자는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팔을 베개 삼은 즐거운 생활이라는 뜻의 곡굉지락(曲肱之樂)이라는 말이 있다. 물질을 추구하기 보다 정신을 추구하는 삶,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그만큼 건전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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