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사진=롯데컬처웍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공유경제’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완전히 소유해서 쓰는 것이 아닌 빌려 쓰는 개념으로 환경오염과 경기침체에 따른 새로운 소비 대안이 되고 있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 법대 로렌스 레식 교수에 의해 처음 등장한 이 말은 생산과 구입, 소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분명 낯선 용어다. 

‘공유경제’는 기존 소비시장의 단점을 보완할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했으나 그만큼 기존의 질서를 위협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유경제’는 기존의 경제인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모빌리티 공유경제 기업인 타다는 새로운 운송 플랫폼으로 택시의 단점을 보완할 대안이 됐으나 택시업계의 반발에 막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심사위원회는 지난달 타다 서비스의 운영을 막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2021년부터 타다의 운영이 어렵게 됐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언제나 견제를 받게 된다. 기존의 시스템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권력을 지키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것의 등장을 방해한다. 이것은 2019년에도 그랬고 1400년대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종대왕(한석규)은 명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조선의 지리적 특성에 맞는 시간과 절기를 찾으려 한다. 이를 위해 외국의 사례도 찾아보지만 이를 실물로 만들어 낼 사람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 세종은 장영실(최민식)을 알게 되고 그에게 조선의 시간과 절기를 찾는 일을 맡긴다. 

세종이 장영실을 등용한 것은 당시에는 굉장한 파격이었다. 관노(관청 소속의 노비)를 등용해 벼슬에 앉힌 것부터 시작해 명나라의 절기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절기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명나라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시 사대부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 ‘천문’이 보여주는 이 같은 전개는 오늘날 과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지난달 23일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과 김성수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이형목 한국천문연구원장, 과기정통부 실·국장, 한국천문학회장, 국내 천문분야 연구자 및 스타트업 대표들과 함께 ‘천문’을 관람했다. 

당시 정병선 차관은 “세종과 장영실이 같은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과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고 김성수 본부장 역시 “세종의 재위기간 중 세계적인 발명품이 다수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장영실이 있었다”고 밝혔다. 

'천문'. [사진=롯데컬처웍스]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따지고 보면 대통령과 연구자의 관계다. 여기에는 오늘날 과학계에서도 필요한 몇 가지 특징이 등장한다. 

세종은 출신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 있는 인재를 등용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기회를 줬다. 게다가 연구의 책임자로서 대외적인 일에 대해 방패 역할을 했다. 인재를 지켜내고 그가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대외업무를 수행하고 비난을 자처한 것이다. 

장영실 또한 연구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 외에 한눈 팔지 않는다. 기관의 책임자를 믿고 따르며 연구기조에 맞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게다가 장영실 또한 프로젝트의 책임자다. 그는 책임자로써 2선에 물러나 지휘를 하는 대신 직접 연장을 붙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천문’에서는 세종의 리더십에 가려 드러나진 않지만 장영실의 리더십과 고집도 상당하다. 

사실 이것은 간단한 문제다. 연구의 책임자와 연구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역할을 다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앞서 말한 대로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일이다. 당연히 기존의 질서 안에 있던 사람들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연구자나 사업가들이 하는 모든 연구와 사업이 이와 같은 반발을 얻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옛 속담대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그것을 이끌어 낼 재능은 우리의 삶을 이롭게 하지만 그것이 꽃 피기까지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영화 ‘천문’은 연구자와 연구의 책임자에게 과제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그와 함께 그 주변인인 관객에게도 과제를 준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등장한 포방터 돈까스집이 제주도로 터전을 옮기기까지 주변의 많은 시기와 질투가 있었다고 한다. 

‘돈까스 잘 튀기는 재능’조차 ‘정을 맞는’ 세상이다. 우리는 모난 돌에 정을 때리지 않을 만큼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모난 돌에 정을 때리지 않는 세상이 와야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이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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