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영화 ‘82년생 김지영’‧‘말레피센트2’‧‘우먼 인 할리우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디즈니, 마노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영화 ‘82년생 김지영’‧‘말레피센트2’‧‘우먼 인 할리우드’.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디즈니, 마노엔터테인먼트]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이뉴스투데이 이하영 기자] 이번 가을은 그야말로 여성 영화 성수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여성 주인공에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연일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과 ‘말레피센트2’를 비롯해 이달 말 개봉 예정인 할리우드 여성 배우와 감독 등을 그린 ‘우먼 인 할리우드’도 있다.

세편의 영화는 드라마, 판타지, 다큐멘터리라는 각기 다른 장르로 구성돼 있다. 출연진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밖에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은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원작이 있는 캐릭터다= 세편 영화는 모두 원작이 있다. 그러나 모두 원작과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캐릭터를 발전시켜 보여준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10월 출간된 조남주 작가 장편소설로 본문 속에 김지영 상황과 그것을 실제로 알려주는 기사 및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여성들이 억압받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원작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달라진다. 암울한 현실을 반복하는 소설에서 벗어나 영화는 김지영이 마음 병을 회복하고 사회로 복귀한 상황을 보여준다. 정체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는 모습으로 결말에서만은 원작을 벗어난 해피엔드다.

2014년작 ‘말레피센트’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원작으로 한다. 다른 점은 오로라 공주를 괴롭히는 마녀인 말레피센트, 즉 악녀를 주인공으로 해 그녀가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드러내고 선악을 바꿔 보여준다는 면에 있다.

영화 ‘말레피센트2’. [사진=디즈니]
영화 ‘말레피센트2’. [사진=디즈니]

‘말레피센트2’에서 말레피센트는 또 한번 변화한다. 자신이 딸처럼 여기게 된 오로라를 위해서 무례를 견디고 인간을 만나고, 심지어 결국에는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는 해법 마련에 고심한다.

다큐멘터리인 ‘우먼 인 할리우드’는 원작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곰곰이 따져보면 앞선 두편보다 월등히 많은 작품을 보유한 영화다. 다루는 영화만 188편이나 되는데다 출연진 또한 96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영화의 주요 소재로 작용한다.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바꿔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던 여성차별 현실이다. 할리우드 미디어 산업 속에서 여성들에게 주어진 일감이 100분에 0.5였던 것을 비롯해 수치를 통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성권력에 규정받는 삶을 산다= 세편에는 각기 주인공을 억압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을 구속하는 세력은 △“여자는 임신하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 “귀한 건 오로지 아들 뿐”이라는 가부장적 세계관 △“버스로 남자아이가 따라온 건 아무에게나 웃어주거나 행실이 좋지 못해서” “화장실 몰카는 찍히는 사람이 바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맘충”이라는 여혐적 세계관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김지영을 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면 본인 욕망이 침해당하는 경우다. 아들을 우선시 하는 가부장적 세계관이 공고해야만 아버지 세대나 그 아들을 낳은 윗세대 여성 권력이 공고할 수 있다. 여혐의 경우 김지영이 ‘잘못했다’고 먼저 규정해 발화자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가해자를 지목하는 형식을 취한다.

‘말레피센트2’는 보다 노골적이지만 교묘하다. 1편에서 말레피센트의 용서로 요정과 인간 세계는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모두가 알던 사실이었다.

(왼쪽부터) 나탈리 포트만, 산드라 오, 클로이 모레츠.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왼쪽부터) 나탈리 포트만, 산드라 오, 클로이 모레츠.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반면 무어스 숲의 부유함을 시기한 잉그리드 왕비가 지속적으로 말레피센트는 어둠의 요정이며 사람들을 이유 없이 죽인다는 소문을 퍼뜨려 진실로 믿게 만든다. 말레피센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결국 의혹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끈질긴 소문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하는 원천이 된다.

현대사회 권력 중 가장 강력한 것을 꼽자면 아마 자본일 것이다.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여성 배우와 감독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바로 자본이다. 자본이 많지 않아도 제작이 가능했던 무성영화 시절 여성과 남성의 영화계 참여 비중은 5대 5였다. 유성영화가 시작되며 스튜디오를 대규모로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은행을 비롯한 기성자본 참여를 필수로 만들었다.

20세기 이전 세계는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기성자본은 남성 감독에게만 일감을 주고 남성 배우들을 중심으로 기용했다. 자연히 캐스팅 권력마저 남성에게 할당되니 남성 제작자‧감독‧배우에 휘둘리며 여성은 부수적인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는 유수 대회에서 상을 받을 만큼 실력이 있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논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낸다= 세편은 각기 장르가 다른 만큼 각기 다른 해결책을 찾아낸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현실을 소재로 했기에 해법도 거기 있다. 김지영이 마음 병을 고치는 해법은 일과 육아의 양립이다. 남편 정대현이 육아휴직을 내고 김지영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영화 마지막에 자신 이름으로 쓴 글이 실린 잡지를 보며 김지영은 비로소 그늘 없이 미소를 짓는다.

디즈니가 만든 ‘말레피센트2’는 동화‧판타지 속 세계답게 결말도 남다르다. 말레피센트가 부활할 수 있는 피닉스의 마지막 후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후 오로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녀가 보다 강력한 마력을 가진 요정으로 다시 태어나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평정한다.

영화 ‘말레피센트2’. [사진=디즈니]
영화 ‘말레피센트2’. [사진=디즈니]

‘우먼 인 할리우드’는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여성들이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수치로 계산해 주장한 것이다. 실제 여성 감독이 전무했던 미국 한 방송사 FX는 여성 감독 비중을 높이고 그해 미국 최고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에미상 후보에 50개 이상 작품이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올 가을 ‘여성 영화 성수기’라 불릴 만큼 여성들이 주인공인 작품이 극장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세편의 영화에서 느낀 가장 큰 공통점은 ‘평평한 운동장’이다. 남성 먼저가 아닌 ‘노력’이나 ‘재능’이라는 보통명사 기준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분명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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