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펜터.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올해 4월에 이 코너에서 ‘어쩐지 병X같지만 멋있는 영화 속 B급 과학’이라는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어쩌면 가능하지도 않을까”라는 상상만을 가지고 적은 글이다.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말처럼 과학은 무엇이든 상상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4월에 미처 담지 못한 ‘B급 과학’을 다시 한 번 소개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좀 더 ‘매니악’하고 음침한 것들이다. 글을 다 읽고 나면 “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가 다 있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생각은 정답이다. 이 영화들은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영화들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있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글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 이 영화들은 모두 존 카펜터 감독의 작품이다. 1948년생인 그는 공포영화와 SF, 액션영화 등 주류 영화계에서 소외받은 B급 장르영화만을 만들어 온 거장이다. 대표작으로는 ‘할로윈’과 ‘괴물’, ‘안개’, ‘빅 트러블’ 등이 있다. 

영화 '괴물'.

◇ ‘괴물’ - 남극에는 무엇이 살고 있나

1982년 영화 ‘괴물’은 존 카펜터의 대표작 중 하나다. 남극기지를 배경으로 외계 괴물이 습격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는 남극기지의 폐쇄성과 끔찍한 괴물의 위협으로 서스펜스와 공포를 배가시킨 작품이다. 

특히 컴퓨터그래픽이 미흡하던 시절에 수작업으로 만든 괴물의 모습은 창의적이면서 디테일이 섬세해 많은 공포영화 팬들의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이 외계 괴물은 평상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어 주변의 동료가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도 준다. 

그렇다면 남극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까? 우리가 하는 남극의 생물은 크릴새우나 펭귄 등이 전부다. 그러나 현미경을 대고 자세히 관찰해보면 ‘괴물’ 못지않게 이상하게 생긴 존재들이 꽤 많다. 

대표적으로 남극 해저 500~700m에 사는 ‘율러기스카 기간티아’라는 벌레는 몸길이 20㎝로 금색 털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사진으로 보면 정말 무섭게 생겨서 따로 사진을 첨부하진 않겠지만 ‘괴물’에 나왔던 외계 괴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이 벌레는 현재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표본으로 전시돼있다. 

‘남극 갯고사리’는 20개의 ‘팔’을 가진 촉수괴물의 모양을 하고 있다. 남극의 얕은 바다에서 6000m 해저까지 살고 있는 이 생물은 2억5000만년부터 살았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이밖에도 남극 거미와 남극 톳토기, 호프 크랩 등 본 적 없는 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영화 '화성인 지구정복'.

◇ ‘화성인 지구정복’ - 진실을 보는 안경

1988년작 ‘화성인 지구정복’(원제: ‘They Live’)은 존 카펜터의 여러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기발한 발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사회를 지배한 상류층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며 이들은 광고와 제품에 비밀 메시지를 숨겨 인간들을 조종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은 이상한 안경을 줍게 되고 이 안경을 쓰면 외계인과 그들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볼 수 있다. 안경을 토대로 진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외계인들과 싸움을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80년대 냉전시대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가졌던 불안을 꼬집으면서 자본주의 국가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영화 속 안경은 대단히 기발하고 신기하다. 

‘외계인을 알아보는 안경’은 당최 비슷한 것을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오늘날 과학기술 중 그나마 닮은 것들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편광안경’은 특정한 광물질이나 광학필터를 사용해 빛을 걸러서 받아들이는 안경으로 잦은 야외활동에서 강한 빛이나 자외선을 차단해 시력을 보호하는 효과를 얻는다. 이를 활용하면 특정 빛(=이미지)을 차단하고 그 이면에 다른 빛을 받아들여 안경이 없이 본 것과 다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편광안경’과 다르지만 LCD 디스플레이에서도 편광필름을 활용해 우리가 보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디스플레이 상에서만 가능하며 영화처럼 사물의 숨은 이미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첩보요원이 아닌 이상 이런 기술이 굳이 필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 '코브라 22시'.

◇ ‘코브라 22시’ - 도시가 섬이 될 가능성?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라는 제목으로 1981년 비디오 출시된 이 영화의 원제는 ‘Escape from New York’(‘뉴욕탈출’)이다.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지만 그 미래는 1997년으로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미래의 미국은 지진과 해일로 섬이 된 뉴욕을 교도소로 활용해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가둬둔다. 어느날 대통령 전용기가 이 감옥의 세력들에게 납치되고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 스네이크 플리스켄(커트 러셀)이 뉴욕에 잠입한다. 

‘코브라 22시’는 저예산 SF 액션영화로 큰 돈을 쓰지 않고도 극적 재미와 긴장감을 주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뉴욕을 폐쇄공간으로 활용해 ‘제한된 장소에서의 액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런 플롯으로 큰 재미를 본 작품이 존 맥티어난의 ‘다이하드’(1988)다. 

그렇다면 지진과 해일은 멀쩡한 도시를 섬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실제 지진으로 인해 지형이 변하는 일은 흔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에도 해저 단층이 65m 튀어오르면서 대규모 해일이 발생했으며 2004년 동남아대지진도 지형뿐 아니라 지구축까지 변화를 일으켰다고 지질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육지의 저지대가 침하되고 이곳으로 쓰나미가 밀려와 물에 잠긴다면 멀쩡한 도시가 섬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이같은 복잡한 조건 없이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되는 도시가 생길 수 있다.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남극과 북극의 모든 얼음이 녹을 경우 해수면은 지금보다 약 30m 상승한다. 이때 중국 산둥과 일본 치바현은 섬이 되고 홋카이도는 2개의 섬으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애석하지만 우리나라의 해안도시들은 섬이 되지 않고 대부분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B급 과학’은 ‘말도 안 되는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코너다. 여기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적어야 하지만 막상 적고 보니 마냥 말도 안 되지는 않는 과학들이다. 

존 카펜터는 한평생 상상력만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영화들을 재미있게 만들어 낸 사람이다. 정말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막상 적고 보니 의외로 말이 된다. 그동안 팬으로써 좋아했던 존 카펜터의 영화들이 이제 다르게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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