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사진=CGV아트하우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1994년’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것을 무작위로 언급해보자.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있고 배우 수지와 혜리가 태어난 해다. LG트윈스가 태평양 돌핀스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 해 MVP는 김용수였다. 가수 장혜진은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라는 노래를 냈고 2018년 이전에 여름이 가장 더웠던 해이기도 하다. 

갑오개혁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 해였고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주사파’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자위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 군대를 파견했고 성수대교 붕괴와 대구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있었다.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고 넬슨 만델라는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됐다.

1994년에는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어느 해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최근 개봉한 두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과 ‘벌새’는 이상할 정도로 1994년을 함께 추억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에서 풋풋한 연애의 추억을 떠올리는 감성멜로영화도 있고 격변의 시대를 통과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도 있다. 사실 ‘유열의 음악앨범’과 ‘벌새’는 1994년 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2019년 8월 끝자락의 극장가에서, “기왕 이렇게 된 거 1994년에 대한 추억을 제대로 파보자”라는 마음으로 그 해에 있었던 과학계 사건들을 되짚어본다.

2월에는 나사의 연구원 앤 하치가 갈릴레오 호의 사진을 분석하던 중 소행성 ‘243이다’의 주위를 공전하던 작은 위성 ‘243 이다 1 다크틸’을 발견했다. 다크틸은 구형에 가까운 달걀 모양으로 크기는 약 1.6×1.4×1.2㎞ 정도다. 

1994년에 우리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당시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8.4도였다. 이 기록은 지난해 서울 낮 최고 기온이 39.6도까지 올라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슈메이커-레비9' 혜성과 충돌한 목성 표면. [사진=플리커]

7월 16일에는 인류가 처음으로 태양계 천체의 충돌을 관측했다. 미국의 천문학자 캐롤린 슈메이커와 유진 슈메이커, 데이비드 레비는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마 천문대에서 목성과 충돌한 혜성을 발견했다. 이 혜성은 이들의 성을 따 ‘슈메이커-레비9’ 혜성으로 이름 지어졌다. 

‘슈메이커-레비9’는 1992년 7월 여러 조각으로 분해된 뒤 1994년 목성과 충돌했다. 당시 전세계 천문학자들은 이 일을 주의깊게 관찰했고 목성이 내태양계로 들어오는 소행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9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에 연차총회에서 북한에 대해 핵안전협정 전면이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북핵문제에 대해 뜻을 모은 일이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9월 윈도우NT3.5를 출시했다. 이것은 첫 한글판 윈도우NT이지만 한글 입출력만 지원된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가 1994년 2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과학적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Anything Goes!(뭐든지 된다)”라는 말을 내세워 과학의 발전은 뭐든지 상상하고 시도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사상을 펼쳤다. 

8월 19일에는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세상을 떠났다. 라이너스 폴링은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을 수상한 화학계 권위자로 분자유전학과 원자핵 연구에 대한 권위자로 알려져있다. 

이밖에 그 해 노벨 물리학상은 버트럼 N. 브록하우스, 클리퍼드 G. 셜이 수상했고 화학상은 조지 A. 올라, 생리학 및 의학상은 앨프레드 G. 길먼과 마틴 로드벨이 수상했다. 

IT 가전업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애니콜 브랜드를 처음 런칭했고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이 첫 출시됐다. 콘솔게임과 휴대전화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 셈이다. 

영화 '벌새'. [사진=엣나인필름]

1994년은 우리 경제의 거품이 꺼지기 이전, 꽤 살만했던 시기였다. 아날로그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막이 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국내외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은 시대가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을 것이다. 

과학계에서도 새로운 것이 발견됐고 위대한 성과가 눈을 감았다. 매년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지만 여러 사건들이 교차했던 1994년에 과학의 일들은 유난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하필 1994년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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