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일본이 2일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에 제한된 타격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장비·부품과 함께 일본 제품의 의존도가 높은 철강·화학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 자동차·화학·조선 분야도 영향을 받게 됐다. 

국내 관련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소재와 장비를 최대한 확보하는 한편 일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통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이후 이번 개정안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 서명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연서한 뒤 나루히토 일왕이 공포하게 된다. 공포 시점으로부터 21일 후 시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시행 시점은 이달 말께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일본은 지난달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당시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아미드 등에 대해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이 조치에 따라 그동안 심사 절차 없이 수출이 이뤄지던 소재들이 일본 정부의 엄격한 수출 심사를 받게 돼 최대 90일까지 수출이 지연될 전망이다. 일본의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수출 규제 품목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들이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반도체·디스플레이 피해 확대…자동차·철강도 영향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업계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ICT업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중에서는 실리콘웨이퍼와 블랭크마스크, 섀도마스크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반도체 기판 역할을 하는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일본 씬에스화학과 섬코가 글로벌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의 의존도도 39.7%에 이른다. 

블랭크마스크는 반도체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를 그리는 극자외선(EUV)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로 일본 호야가 독점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에 역량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EUV 생산라인도 대폭 늘렸다. 화성캠퍼스의 EUV 전용 라인도 2020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말 EUV 전용 공장인 M16 공장 착공 계획을 밝혔다.

섀도마스크는 파인메탈 마스크(Fine-metal Mask)로도 불리는데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얇은 철판으로 유기물이 기판 위 특정 위치에 증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기판 위에 유기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뿌려 만드는 OLED 패널은 기판에 섀도마스크를 올린 후 그 위로 유기물을 뿌리는 공정을 거친다. 

이밖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들도 영향을 받게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장기적인 시설 투자 계획을 세운 만큼 장비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매년 11조원씩 총 133조를 투자하기로 했다. 주로 R&D 및 시설에 투자하기로 한 만큼 장비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으며 LG디스플레이도 OLED 전환을 위한 시설투자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외에 화학·철강 분야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전기차와 수소차 등 미래형 자동차에 역량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업계의 타격이 예상된다. 

배터리의 경우 양·음극 바인더와 동박, 파우치필름 등 소재에 대한 일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다만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과 전해질 등 배터리의 핵심 소재는 국내 기업들과 중국이 역량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재로 타격이 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탄소섬유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의 제품은 수소저장용기나 자동차 프레임 등에 쓰인다. 자동차 업계는 수소저장용기의 경우 효성첨단소재 등 국내 업체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우 일본 고철의 수입 의존도가 63%로 높은 편이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고철도 품질이 좋아 대안을 찾는게 어렵지 않다는 주장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는 대안이 있지만 일본은 한국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 공장 내부.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공장 내부. [사진=SK하이닉스]

◇ 장기적으로 소재·부품 국산화 계기될 것…단기 피해 최소화 관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산업계에 단기적인 타격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입경로 다변화와 함께 국내 소재·장비 관련 기업들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실리콘웨이퍼의 경우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SK실트론의 역량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솔브레인과 이녹스첨단소재, 동진쎄미켐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기업들도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은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을 겪을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혜를 보게 될 것”이라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이 앞으로 국내산 소재의 비중을 늘릴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소재 업체들도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배터리와 탄소섬유 등 화학소재 기업들도 국내 소재 기업과 협업을 늘릴 것으로 예상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생태계 발전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내 소재·장비 기업들이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 산업계의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배제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민관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철저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조기 물량 확보, 대체 수입처 발굴, 핵심 부품·소재·장비 기술개발 등을 위한 세제·R&D 자금·무역보험 등 가용 수단을 총력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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