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안중열 기자] 일본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소재 등의 수출 규제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해오던 청와대가 4일 강경 대응으로 선회했지만 여전히 외교적 해결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사상 초유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일본의 태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그간 정치‧외교적 문제로 긴장 상태를 이어온 만큼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이 6월 28일 오후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텍스 오사카 내 양자회담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청와대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받을 타격의 최소화를 위해 재계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5일 “업계의 대응책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논의 중에 있다”며 “공식적인 회의 회담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전방위적으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출규제와 관련해 우리 청와대가 대응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몇 명 전문가들 의견이니 결과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또 ‘과거 선례처럼 WTO 제소와 별개로 그 기간(1년 6개월가량) 우리 기업이 받는 피해는 피할 수 없지 않는가’란 질문에 대해선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는 앞서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NSC 상임위원회에서 일본의 규제 조치를 ’명백한 WTO(세계무역기구)의 규범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경제보복 조치 철회를 위한 외교적 대응방안을 적극 강구키로 했다.

청와대 관계가자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정치‧외교적 문제가 경제마찰로 확전되는 상황이 우려스럽지만, 자칫 우리 정부의 대응으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던 상황이 180도 바뀐 셈이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기 때문에 일본의 조치를 ‘보복적 성격’으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날 오후 NHK로 중계된 당수토론회에서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말해 사실상의 보복 조치임을 내비친 바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정승일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주재로 긴급대책회의를 하기 위해 함께 정부서울청사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의 강경대응 움직임엔 일본의 태도가 명백히 ‘수출제한 조치는 WTO 협정상 원칙적으로 금지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무역자유화를 추구하는 WTO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는 국제법적인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윤 수석은 ‘외교적 대응방안’과 관련, “WTO 제소는 물론 자유무역주의에 위배된다는 사실 등 이번 조치의 부당함을 주요국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이날 JTBC에 출연, “아베 총리가 ‘한국이 약속을 어겨서 조치를 했다’고 말했는데, 직접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은 정치적 이유로 경제 제재를 했다는 점을 밝힌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바이오헬스, 미래차와 함께 3대 신산업으로 삼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타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미래의 성장을 떠받칠 동력 중 하나가 위기에 처한 만큼 정부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된 바 있다.

다만 청와대가 일본과의 무역 전면전으로 번질 우려가 있어 강경대응에 나설지는 아직까지 판단하기 어렵다. 또 일본과의 관계를 과거사와 분리해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애초 취지에서도 벗어난다.

청와대는 일본의 조치에 대해 애초 보도자료에서 ‘WTO 규범과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정치적 보복’이라고 표현했다가 자료를 다시 배포해 ‘보복적 성격의 조치’로 이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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