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 소재 제품에 대한 사실상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정부가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정환용·송혜리·고선호 기자] 일본의 수출 제한에 맞서 정부가 WTO(국제무역기구) 제소 등 강경대응에 나설 방침이어서 양 국가 간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일본이 명목상 그동안 한국에 제공했던 혜택을 앞으로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만큼 표면적으로 전면적인 ‘수입 제한’ 조치와는 결을 달리 하기 때문에 국제 무역 사회에서 법적·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일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일본 정부의 보복성 수출 제한 조치는 WTO가 명시한 통상 협상에서 기본이 되는 국제규약에 위배되는 사안으로 규정, WTO 제소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모든 국가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최혜국 대우의 원칙’을 근거로 이번 수출제한 조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최혜국 대우’는 WTO가 규정하고 있는 협정 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WTO 협정 하에서는 특정국가에 대해 특혜를 부여하거나 회원국들 간에 차별적인 대우를 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WTO 회원국에게도 그와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

이 원칙은 상품교역을 관장하는 ‘GATT 제1조’에 명시돼 있으며, 특정국가에 불공정한 조치를 부여하게 되면 최혜국 대우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제한 조치는 명백한 WTO 협정 위반”이라며 “일본 측 조치가 한국 반도체 수출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는 동시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기술 국산화를 위한 R&D에 집중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는 한국 정부가 그동안 수출절차 간소화 혜택을 받던 ‘백색 국가’ 지정 자체를 해제하는 것인 만큼 차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면 수출 제한 품목을 수입할 때마다 일본 정부의 허가와 심사를 받아야 한다.

당초 이번 조치 자체는 표면적으로 그동안의 혜택을 철회하는 내용이지 제품 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존의 ‘금수조치’와는 명백히 성격이 달라 WTO에 제소한다 하더라도 승소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제소한다 하더라도 소송 절차에 걸리는 과정 상 국내 기업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제소 자체에 대한 명분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 법조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편 업계 역시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제품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본 수출제한 조치에 동원된 세 가지 소재는 △투명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HF) 등으로, 일본업체가 시장의 70~90%를 점유하고 있다.

투명 폴리이미드는 스마트폰이나 TV용 OLED·LCD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투명 필름으로, 이번 조치에 따라 국내 스마트폰 관련 기업들은 물론 삼성과 LG디스플레이에서 생산한 디스플레이 패널이 적용된 아이폰을 생산하는 애플 역시 타격이 클 것으로 여겨진다.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사용되는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지난해 수입분의 91.9%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물량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고순도 불화수소 역시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깎는 식각과 세정 공정 등 필수 공정에 필요한 핵심 재료로 액체 상태의 원재료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는 상황이라 문제가 심각하다.

이번 수출 제한 조치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업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일본의 반도체 소재 규제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약 3개월 분량의 재고를 준비해 놓고 대비했지만, WTO 제소부터 효력 발생 시기까지 얼마나 시일이 소요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소재 수입 다변화 등 대안마련이 절실하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제재 품목 3개 모두 대체가 어려운 물질들로 재고에 공백이 생기면 곧장 모든 생산이 스톱된다. 모든 원재료를 한 곳에서만 공급받는 것이 아닌 멀티벤더 시스템으로 돌리고 있지만 일본 의존도가 높은 건 사실”이라며 “규제 활성화 전까지 최대한 물량확보를 위해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지만,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장기화 돼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반도체 산업은 물론 반도체를 탑재하는 완제품, 나아가 국내 4차 산업혁명기술 산업·5G 관련 산업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5G 초연결 특성을 바탕으로 무수한 사물이 ICT화 되고, 또 이를 통해 오고갈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반도체는 핵심부품이기 때문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5G 기술은 ICT화 돼 있지 않았던 사물을 ICT화 할 것이기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또 5G 특성상 데이터량이 대폭 늘어날 것인데 이를 처리할 스토리지, 메모리 등 수급이 원활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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