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마이너스 성장, 사상 최악의 일자리 위기 등 나쁜 말만 들리던 산업현장에서 오랜만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가 올해 1분기 해외에 수출한 석유제품이 1억1964만배럴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낭보다.

무려 2억 배럴에 가까운 수출물량은 국내 업체들이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던 2017년보다 나은 성적이다. 특히 비수기인 봄철 기록이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한석유협회는 이를 각사의 수출국 다변화와 생산시설 고도화 노력의 결과로 해석하며 올해 하반기 각사의 실적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놓친 사실은 가격 부문을 제외한 해외 수출물량 부분에서만 그렇다는 점이다.

국내시장 상황을 보면 기업들은 오히려 울상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 철회 이후 최종 소비자 판매가가 치솟으며 수요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철회 조치 보름 지나지 않아 최종 단계에서 판매되는 보통 휘발유 값은 35.61원 오른 1524.45원을 기록했다. 반면 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은 일주일만에 리터당 5.3원 하락한 1403.7원이었다. 

얼핏 정유4사가 폭리를 취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매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요위축과 거래량 감소가 기업엔 오히려 악재이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줄면 판매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매출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즉 이번 유가상승은 고스란히 정부에만 안겨질 이익이란 얘기다. 

판매가가 오르면 기업의 수익이 오른다는 시장 원리도 무력화됐다. 그럼에도 해외시장에서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정유사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어디 탈출구도 없는 한국 정부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결손 4조원의 원인을 유류세 인하로 보는 자유한국당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이번 조치를 단행했다. 하지만 거둬진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보면 2017년에 15조6000억원, 2018년엔 15조3000억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4조는 어디로 갔을까? 각부처 예산편성 지침이 되는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보면 답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 3월 국무회의를 열어 교통·에너지·환경세의 15%를 환경분야에 쓰도록 세출 방침을 조정했다.

잘못이 없는 유류세를 범인으로 몰아, 환경 분야 예산을 2조2000억원 가량 미리 챙기려는 시도다. 이 결과 에너지 비용이 높아지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건 당연지사다. 정책 실패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의 몫일 뿐이다. 이 정도 되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기업이 쌓은 탑 정부가 무너뜨린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