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 상품이다. 위험이 닥치기 전까진 실효성을 파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유형(有形)인 보험사는 생성과 소멸의 역사를 거쳐 왔다. 현존하는 24개 생명보험사와 15개 손해보험사는 풍파를 거쳐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에 지금도 계속되는 인수·합병 속에 있는 보험사 역사를 짚어보며, "그 보험사는 어떻게 됐지?", "이 보험사는 언제 생겼지?"라는 의문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이 코너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메트라이프, 처브라이프, AIA생명, 푸르덴셜 생명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계 보험사다. 해당 보험사는 서로 다른 역사를 거쳐 국내에 진출했다. <사진제공=각사>

[이뉴스투데이 김민석 기자] 보험시장엔 '국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중국에서 멀리는 미국, 영국까지 다양한 외국계 보험사가 국내에 정착해 영업하고 있다.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외국계 보험사를 '규모 경쟁' 측면에서 보면 국내에서 역할이 작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계 보험사는 지금도 국내 시장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고 또 없어서는 안 될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과연 외국계보험사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이 보험사들은 어떤 역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일까? 수많은 국가에서 수많은 보험사가 오고간 만큼, 멀리 떨어진 미국과 유럽 출신 보험사부터 찬찬이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 뉴욕 소재 메트라이프 본사(왼쪽)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오른쪽) 전경 <사진제공=메트라이프>

◇ 미국 최대 보험사 'MetLife'… 1989년 한국으로 들어오다

국내에서 미식축구 인기는 미미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미식축구는 '국민스포츠'라 불릴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은 미국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프로그램일 정도다.

서두부터 미식축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뉴욕을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 '자이언츠'의 홈구장 이름이 이번 이야기 주인공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자이언츠 홈구장은 8만256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이다.

미국에서 가장 거대한 미식축구팀 홈 경기장을 건설할 만큼 '메트라이프'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메트로폴리탄 라이프 인슈어런스(Metropolitan Life Insurance)의 줄임말인 메트라이프는 2009년 기준 총자산 5393억달러(약 617조원)와 보유계약액은 3조6000억달러(약 4122조원)를 기록한 공룡 보험사다.

공룡 보험사 메트라이프가 한국에 첫 발을 들인 건 1989년 1월이다. 당시 코오롱과 손을 잡고 진출을 타진한 메트라이프의 첫 명칭은 '코오롱메트생명보험(주)'였다. 설립당시 자본금은 318억원이었다. 1993년 11월 서울 용산구에서 강남구 삼성동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도 했다.

메트라이프는 1998년 총자산을 5100억원으로 늘렸다. 임직원은 656명이었고, 158개 점포에서 2951명의 설계사가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메트라이프에 1998년은 중요한 해다. 규모가 성장했을 뿐 아니라, 3월 미국 메트라이프 본사가 코오롱그룹 지분 100%를 인수하며 단독 주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메트라이프 본사는 코오롱 보유 주식 49%를 230억원에 인수했다.

메트라이프는 같은 해 4월 영업점포를 지점체제로 전환했다. 6월엔 명칭마저 '메트라이프생명보험(주)'로 바꿨다. 이어 8월엔 1호 전속점포인 청운지점을 개설한 메트라이프는 본격적인 한국 공략을 시작한다.

메트라이프는 2000년 2월 증자를 실시하며 자본금을 977억원으로 증가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장은 같은 해 3월 56억원 규모의 흑자를 거두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후 메트라이프는 2009년까지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2009년 당시 흑자 규모는 1093억원이다. 메트라이프는 2014년 3월 15조원이 넘는 총자산을 지닌 보험사로 성장했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변액유니버설보험'을 출시한 메트라이프는 생명보험, 연금보험, 건강보험 등 인보험과 재보험만을 취급하는 경영방침을 지니고 있다. 손해율이 높은 실손의료보험은 취급하지 않는다. 2016년엔 100% 출자한 전속 독립법인대리점인 '메트라이프 금융서비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 처브(Chubb)=뉴욕(New York)=에이스(Ace)?… '처브라이프 & 에이스손해보험'의 인수·개명 역사

뉴욕라이프(위)와 에이스손해보험(아래) 로고 <사진제공=각사>

처브(Chubb)그룹은 1882년 미국에서 설립된 언더라이팅 기업이다. 세계 54개국으로 뻗어나가 있으며, 규모로만 따지면 세계 4위에 해당한다. 보유한 보험 전문 임직원 수는 3만1000여명이다. 생명보험업과 손해보험업을 동시에 영위하고 있으며, 2015년 말 기준 5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2016년 6월 기준 43조2000억원의 수입보험료를 기록한 바 있다.

뉴욕라이프는 1854년 1만7000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노틸러스 보험회사'를 모태로 한다. 1849년 '뉴욕라이프'로 이름을 바꾸고, 보험가입자에 대한 현금배당 최초 지급, 남성·여성에 동등한 보험가율 적용 등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0년 기준 포춘지 선정 100대 기업 가운데 64위에 오르기도 했다.

처브그룹과 뉴욕라이프를 설명하려면 '에이스보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에이스보험은 1985년 34개 미국기업이 규제를 피해 세금 회피처로 유명한 케이먼 제도(Cayman Islands)에 설립됐다. 이후 에이스보험은 1993년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며 주식회사로 변모하고, 2008년 본사를 스위스 취리히로 옮긴 뒤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세 보험사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이 세 보험사가 국내에서는 하나의 보험사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첫발을 디딘 것은 에이스보험이다. 1968년 기존 보험사를 인수해 하트포트 화재보험으로 한국에 들어온 에이스보험은 손해보험업만 영위했다.

다음은 1990년 7월 한국에 진출한 뉴욕라이프다. 1992년 고합그룹과 합작해 '고합뉴욕생명(주)'로 등록을 마친 뉴욕라이프는 1999년 11월 '뉴욕생명보험(주)'로 이름을 바꿨다.

에이스보험은 2010년 뉴욕생명 지분을 100% 인수하며 한국에 들어왔다. 2011년 2월 명칭도 ‘에이스생명보험’으로 바꿨다. 정리하자면 2011년까지 국내엔 '에이스화재' 그리고 '뉴욕생명'을 인수한 '에이스생명'이 있었던 셈이다.

판도는 2015년 7월 뒤바뀐다. 에이스보험이 처브그룹을 인수한 것이다. 당시 인수가는 283억달러(약 31조7000억원)으로 보험업계 인수합병(M&A) 규모 중 역대 최대다. 한국 상황을 놓고보면 에이스보험이 '뉴욕'을 집어삼킨 셈이 됐다. 미국 내 뉴욕라이프는 여전히 독립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명칭이 복잡해졌다. 에이스보험은 국내에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에이스생명'과 '에이스손해보험'을 지니게 된 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브랜드'였다. 처브는 유구한 역사와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규모를 지닌 보험사였다. 그만큼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았다.

결국 에이스생명은 보험사 명칭을 모두 '처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2016년 에이스생명은 명칭을 '처브라이프'로 바꿨다. '에이스화재' 명칭도 처브로 바꾸려 했으나 1968년부터 이어온 명칭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에이스아메리칸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한국지점'이라는 공식 명칭에 '처브그룹 계열사'를 포함시켰다.

정리하면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보험사는 '처브라이프'와 '에이스손보'다. 이 둘은 에이스보험 소속이지만 동시에 처브그룹 소속이기도 하다. 두 그룹이 같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처브라이프는 종신·정기·연금보험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에이스손보는 장기·화재·해상보험 등을 다루며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 푸르덴셜, PCA… 이름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다?

미국 프루덴셜생명(위)과 영국 프루덴셜생명(아래) 로고 <사진제공=각사>

세계에는 두 군데의 '프루덴셜(Prudential)'이 있다. 하나는 영국에 또 하나는 미국에 위치해있다. 두 기업은 이름은 같지만 나머지는 모두 다르다.

먼저 생겨난 곳은 영국이다. 영국 프루덴셜은 1848년 5월 30일 런던에서 설립됐다. 성장을 거듭해 현재는 영국 내 최대 보험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 프루덴셜은 1875년 뉴저지에서 세워졌다. 미국이라는 신대륙으로 건너간 유럽인이 보험의 필요성을 느껴 회사를 설립하려고 했는데, 당시 유럽 내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프루덴셜이란 명칭을 그대로 가져갔다는 설이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 2위에 해당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보험사다.

문제는 이 둘이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빚어졌다. 똑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두 회사가 같은 나라에 진출하면 명칭이 겹치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두 회사는 협정을 맺었다. 특정 국가에 먼저 진출한 회사가 '프루덴셜'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후발 주자로 들어온 기업은 프루덴셜을 내표한 약자를 명칭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내에선 미국계 프루덴셜이 먼저 입성했다. 1989년 '한국프루덴셜생명보험'이란 명칭으로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후 국내에서 사용되는 '푸르다'라는 단어의 어감이 긍정적이어서 '프루덴셜'을 '푸르덴셜'로 바꿨다.

영국 프루덴셜은 한국에 2001년 11월 '영풍생명'을 인수하며 진출했다. 이 때 협약내용이 발동해 명칭을 'PCA(Prudential Corporation Asia)생명'으로 확정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푸르덴셜생명은 2002년 강남으로 본사를 이전했고, 2007년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며 국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PCA생명은 브랜드를 차지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3월 미래에셋생명에 인수돼 자취를 감췄다.

[연합뉴스]

◇ AIG=AIA?…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초래한 이별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AIG와 AIA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시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공식 스폰서를 책임졌던 것이 AIG이고, 현재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 공식 스폰서가 AIA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둘이 같은 뿌리에서 태동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두 회사 모두 A(American)을 공유하고 있지만, 설립지가 ‘중국’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우선 AIA생명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한 인타스코(INTASCO·International Assurance Company)가 모태다. 인타스코는 1931년 싱가포르에 첫 지사를 세우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이후 1947년 홍콩으로 본사를 옮긴 위 명칭을 'AIA(American Insurance Assurance)'로 변경했다.

AIG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AAU(American Asiatic Underwriters)로 처음 시작했다. 1926년 미국 뉴욕으로 뻗어나간 AAU는 'AIU(American International Underwriters)'로 명칭을 바꾼 사무소를 개설했다. 이후 1939년 본사를 뉴욕으로 이전하고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지로 뻗어나갔다.

한국 진출시기는 AIG가 더 빨랐다. AIG는 1947년 AIUC로 첫 발을 내딛고 1954년 AIU서울지점을 개설하는 등 국내에 진출한 최초의 외국계 손해보험사로 등재돼있다.

AIA생명은 1987년 '알리코생명보험'이라는 명칭으로 한국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는 AIA만의 다른 법인이 아니었다. AIA는 이미 AIG의 생명보험 분야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즉, 국내에는 AIG가 진출한 것이지만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이름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알리코생명은 1997년 AIA로 잠시 이름을 바꿨다가 2000년 AIG생명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하지만 이 이름도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AIG그룹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AIG그룹엔 미국 정부 구제금융 자금이 들어오면서 다행히 부도는 막을 수 있었다. 한숨을 돌린 AIG는 이 구제금융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계열사를 정리해야 했다. 이에 AIG는 AIA를 매각해 이 자금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매각이 쉽지 않았다. 결국 AIG는 AIA에 대한 기업공개를 실시했고, 2010년 10월 홍콩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당시 상장은 205억1000만 달러를 조달한 홍콩 증권거래 사상 최대 규모였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AIG그룹은 금융위기로 AIA를 분리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계열사 이름도 바꿨다. 국내에 있던 AIG손해보험은 '차티스 손해보험'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또 AIG생명은 2009년부터 AIG생명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변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AIG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 경영진이 명칭을 다시 AIG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AIG와 AIA는 법인이 분리됐기 때문에, 바뀐 명칭은 손해보험에만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현재 국내에선 AIA생명과 AIG손해보험이 독립된 법인으로 영업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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