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레이드러너' 중 한 장면. <사진=해리슨컴퍼니>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영화나 소설 속에서 상상하는 미래 모습이 반드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며 우리는 그때의 상상을 기반으로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왔다.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는 처음으로 태블릿PC와 영상통화가 등장했다. 물론 우리는 2001년에 우주여행을 하지도 못했고 태블릿PC와 영상통화도 볼 수 없었지만 얼마 뒤 그 중 몇 가지는 현실이 됐다.

리들리 스콧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는 SF영화의 고전이다. SF소설가 필립 K.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일본 버블경제 시절 사이버펑크 SF애니메이션과 이후 등장하는 많은 SF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블레이드 러너는 미국 개봉 당시 지나치게 음울한 분위기 때문에 대중의 외면을 받았으나 이후 평단에서 찬사를 받으며 SF의 클래식이 됐다. 그 영향으로 지난해에는 무려 35년만에 속편 ‘블레이드러너 2049’가 개봉하기도 했다.

블레이드 러너는 핵전쟁 이후 암울해진 2019년을 배경으로 복제인간 6명과 이들을 추격하는 형사 데커드(해리슨 포드)의 이야기를 다룬다. 복제인간들은 식민지 행성 개발을 위해 제작됐고 평균 수명은 4년이다.

이들은 인간과 거의 유사한 사고를 하지만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노동만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복제인간의 권리에 대해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방식을 빌어 이야기한다.

인간 복제는 과학계에서는 아주 오래된 화두다. 현대 의술로 정복하지 못한 수많은 질병에 대해 세포 복제가 해답이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인간 전체를 복제하지 않더라도 장기 일부를 복제해 이식하면 더 많은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ZME사이언스에 실린 황우석 박사의 레나종 망아지 복제 소식. <사진=ZME사이언스 캡쳐>

이 때문에 인간 복제에 앞서 동물을 복제하는 시도는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 줄기세포 복제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황우석 박사(에이치바이온 대표)는 9월 러시아 연구팀과 4만년전 얼어 죽은 망아지 복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전문매체 ZME사이언스와 시베리아타임즈에 따르면 이 망아지는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 지하 30m에서 신체가 완벽하게 보존된 채로 얼어 죽어 있었다. 약 4만년전에 태어나 생후 20일만에 죽은 이 망아지는 현재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황 박사 연구팀은 이 망아지 복제에 성공하면 코끼리를 대리모로 활용한 매머드 복제에 나설 계획이다. 2014년 러시아 시베리아 동토대에서는 4만3000년전 멸종한 암컷 매머드가 근육과 간, 혈액 등이 보존된 상태로 발굴된 바 있다.

앞서 올해 초에는 중국과학원 신경과학연구소 연구진들이 세계 최초로 체세포핵치환(SCNT) 기술을 활용해 원숭이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SCNT는 과거 복제양 돌리에 사용된 기술이지만 영장류에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들은 “이제 연구실에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원숭이를 만들 수 있게 됐다”며 “이런 복제 원숭이를 통해 뇌신경질환이나 암 같은 사람의 질환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간이나 동물을 복제하는 데는 여전히 윤리적 문제가 남아있다. 교황청은 중국이 원숭이 복제를 성공한 당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니다”며 우려를 표했다.

빈센초 팔리아 교황청 생명학술원장은 “이런 성취를 이루기까지 많은 동물의 생명이 희생된다”며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개입 결과를 항상 숙고하고 향후 인체에 대한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관리에 있어 실수할 위험을 따져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복제인간 로이(룻거 하우어, 왼쪽)는 인간적인 감성과 욕구를 지니고 있으나 평생 노동만 하다 짧은 생을 마감한다. <사진=해리슨컴퍼니>

이 밖에 온전한 신체를 가진 복제인간이 탄생하더라도 이들의 인격을 둘러싼 논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복제인간들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데 쓰인다. 특히 영화 속 로이(룻거 하우어) 일행은 식민지 행성에서 평생 노동만 하다가 지구로 탈출했다.

로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당신네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봐왔어. 오리온좌 너머에서 불타는 전함, 텐하우저 게이트 근처에서 어둠에 반짝이는 C-빔을 봤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져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라는 대사를 한다.

인간 손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내뱉기에는 지나치게 감성적인 대사다. 이 장면은 로이가 인간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우주의 광활한 풍경에 감탄할 줄 알고 자신의 죽음에 괴로워할 줄 안다. 그러나 그는 노동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단 4년만 살 수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수단일 뿐 아직 자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하고 AI가 자아를 인식하게 된다면 인간은 AI를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는 과학계 뿐 아니라 철학계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담론이다. 이중원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의 존재론’이라는 책에서 AI를 비인간적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논했다.

이중원 교수와 공동저자들은 “인공 초지능의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종말론적 위험을 언급하기보다는 인간이 다른 종류의 지능을 가진 존재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이 바람직한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은 ‘인간이 아닌 인격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 블레이드 러너는 30여년전에 이를 예견한 영화다. 그리고 이후에도 복제인간과 AI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언급한 작품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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