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 삼성 부회장 등 재계 3·4세가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막대한 상속세 등에 막혀 승계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 부회장, 이우현 OCI 사장, 구광모 LG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국내 주요 그룹 회장 나이가 70~80대에 접어들고 있지만 승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재계 3·4세들이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부담에 회장 타이틀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승계 부담을 덜어줬던 순환출자나 공익재단 활용은 최근 당국의 눈초리가 거세지며 설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경영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그룹 동일인을 이건희 회장에서 3세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 또는 법인으로 대기업집단 정책 기준점이 된다. 이 회장이 2014년 5월 이후 와병으로 경영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공정위는 삼성그룹 실질적 지배력이 아들 이 부회장으로 넘어갔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삼성그룹이 일감몰아주기 등 규제를 위반하면 이 회장이 아닌 이 부회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된다.

하지만 ‘사실상’ 총수인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 소식은 아직 잠잠하다. 삼성물산 지분 17.08%를 확보하며 기반을 마련했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천문학적 상속세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재 상속세 규정상 대주주는 최고세율 50%에 최대 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해 최고 65%의 실효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최고 세율인 26.3%보다 두 배 이상 높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주식 가치는 시가 18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지분을 모두 상속받을 경우 최대 10조원에 가까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고(故) 이수영 OCI 회장 별세 후 대표에 오른 3세 이우현 사장은 최근 최대주주 자리를 내줘야 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때문이다. 이 사장은 보유 주식 25만7466주를 매각해 지분율이 종전의 6.12%에서 5.04%로 줄며 기존 최대주주에서 이화영 유니드 회장,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에 이은 3대 주주로 밀려났다. 이 사장은 부친으로부터 지분 133만9674주를 상속받으면서 약 11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했다.

최근 회장직에 오른 LG 4세 구광모 회장도 취임에는 성공했지만 지분 승계는 미완성이다.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LG 지분 11.28%는 시가 약 1조3000억원이다. 이를 상속받기 위해 구 회장이 내야 할 상속세는 약 6400억여원에 달한다. 구 회장 역시 지분 매각을 통한 상속세 납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대신해 경영 일선에 선 정의선 부회장 경영권 승계도 답보상태다.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으로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작업에 착수하려던 현대차는 엘리엇 공세와 국내 대표 자문사 반대에 부딪혀 결국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다. 향후 새 개편안 마련이라는 과제와 함께 지분 상속을 위한 상속세 납부 부담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처럼 재계 3·4세들이 최근 젊은 나이에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이들이 보유한 현금이나 보유 지분 배당 수익으로는 천문학적인 상속세 납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들은 비상장회사 주식을 확보한 후 일감몰아주기나 순환출자를 이용해 재원 마련과 지배력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왔다.

하지만 최근 당국의 강력한 기업 규제 드라이브로 순환출자 고리는 90%이상 감소했고 일감몰아주기 역시 강력한 해소 압박을 받고 있다. 상속세 부담을 더는데 이용되던 공익재단 역시 공정위 전수조사 등 감시가 강화된 상황이다. 결국 지분매각이 유일한 방안이지만 이는 경영권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의 경영권 약화는 결국 엘리엇과 같은 외국 자본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미국, 독일, 일본 등 상속세 부담 완화 정책을 펴는 주요 선진국 기조에 발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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