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 노동조합원들이 지난 3월 23일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자대회 사전행사에 참가해 사명이 적힌 피켓을 들고 회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출처=전국금속노조>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경남 통영시 성동조선해양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매각 불발시 공중분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독일의 고용유지를 전제한 인수합병(M&A)정책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8일 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성동조선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이 국내외 조선소와 사모펀드에 투자안내서를 배포하면서 '최대한 고용유지'를 주장해 온 노조측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채권단과 사측은 매각 이전 인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노조측은 잠재적 매수자와 노조가 협의를 통해 고용승계를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박경태 성동조선노조 수석부지회장은 "회사를 살 의향이 있는 기업들이라면, 노조측과 미리 논의를 통해 고용승계를 어느 정도 하겠다는 약속이나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정관리 결정 이후 희망퇴직을 진행한 결과 성동조선에 현재 남은 직원은 생산직 570명과 사무관리직 250여명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360여명이 퇴직했다. 한때 하청노동자를 포함해 8400여명이 삶을 이어가는 일터였지만 7580명이 떠나고, 800명의 고용유지도 어려운 빈 공장으로 향해가고 있는 것이다.

채권단과 사측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M&A가 실패하고 회사가 청산으로 가는 경우다. 특히 법정관리 결정 이전까지 일감으로 있던 그리스 선사로부터 수주한 유조선 5척이 지난 5월 '테이프 커팅' 전에 취소되면서 우려감은 더욱 커졌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5척의 선박이 2017년 5월 수주 물량인 만큼 지난해 11월 컨설팅 결과에 포함됐을 것"이라며 "노조측의 목소리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재무적으로도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사측은 7000억원으로 산정된 청산가치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해 조선소에 직원 100명만 남기고 '유급휴가'를 진행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 노조가 오히려 유급휴직을 반대하며 기한없는 무급휴직은 물론, 통상임금 반납, 복지 축소를 제안하고 있다. 노조는 동시에 김경수 경남지사에게도 "성동조선의 구조조정에 대해 당사자로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며 공세를 강화했다.

김 지사도 이에 "정리해고 없이 진행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답변하면서 독일에서 실시되고 있는 고용유지를 전제로 한 독일의 사례들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행정적으로 검토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전직지원기업(Transfergesellschaft) 설립이다. 독일의 해고보호법은 M&A로 근로자의 일부나 전부를 해고해야할 경우 사내에 별도의 기업인 전직지원기업을 통해 돕도록 하고 있다.

전직지원기업이 출범하면 기존 기업과 고용관계는 종료된다. 이후 전직지원기업과 고용관계를 맺은 노동자는 1년까지 고용청에서 실업수당 정도의 임금액에 더해 사측에서 노사협상으로 결정된 나머지 액수를 지급받는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으로 기존에 받던 월급 수준의 지급이 이뤄지는데 해당 기간동안 구직활동도 가능하다. 구직을 하지 못한 노동자는 실업자로 등록된다.

하지만 전직지원제도는 성동조선이라는 기존 일자리가 일부 사라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동시에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아 중앙부처나 경남도 차원에서 예산을 들여 시범사업으로 추진해야 하는 리스크가 없지 않다.

결국 노조측이 매각에 참가해 독일의 칼슈타트(Karstadt) 백화점 사례처럼 '고용과 인수가격 조정협상'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롯데, 현대, 신세계 백화점과 비교할 수 있는 독일의 백화점 체인 칼슈타트는 지난 2014년 고용유지 조건으로 오스트리아 사업가인 레네 벤코(Rene Benko)에 단돈 1유로(1500원 상당)에 인수됐다.

레네 벤코는 당시 칼슈타트를 인수하며 2년간 지점을 폐쇄하지 않으면서 현재의 인원을 유지하며 경영혁신을 이룬다는 조건으로 회사를 사들였다. 결과 2년이 지나 일부 근로자를 해고하고 일부 지점은 폐쇄하기도 했지만 한때 사라질 뻔 했던 대형백화점은 여전히 건재하며 계속기업으로 살아 남았다.

이를 성동조선에 대입하면 현재 노동자는 기업이 다른 사주에 인수되더라도 계속 근로를 유지하다 조선 시황 반등기에 신속히 투입될 수 있다. 기업 역시 별도의 신규채용 비용을 치르지 않고 높은 생산성을 지닌 노동인력 활용이 가능하다. 부채도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갚아나갈 수 있다.

다만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어 인수기업이 합의 당시에는 그럴듯하게 얘기하고 나중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위험성은 있다. 또 안전장치가 없으면 헐값에 매입한 기업을 쪼개서 비싸게 팔면 인수자만 거액의 돈을 벌수도 있다.

정미경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조가 나서 고용과 인수가격 조정협상을 할 수 있다면 사측도 노동자 해고로 인한 법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일방적인 해고통보가 이뤄지기 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노사상생의 길이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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