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광화문사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에 대해 공식사과했다. <사진=이태구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아시아나항공의 이른바 '기내식 대란'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논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투자금 확보 탓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며 그룹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일부터 기내식 공급 지연으로 항공기 출발이 미뤄지거나 기내식 제공이 없는 '노 밀(No Meal)' 운항이 잇따르면서 기내식 대란이 빚어졌다. 사흘간 기내식이 미지급된 항공편은 130편이 넘는다.

아시나아항공은 사태 발생 나흘만인 5일 모든 항공편의 기내식 공급이 원할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상적인 식사가 아닌 샌드위치 등 '간편식'을 제공하고 있다. 기내식 공급이 완벽하게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업계 전반의 관측이다.

이번 논란의 표면적인 원인은 기내식 공급 업체 변경에 따른 운영상의 혼선이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공급을 15년간 담당해 온 LSG스카이셰프코리아(이하 LSG)와의 계약은 지난달 만료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하이난그룹 계열사인 게이트고메스위스와 합작법인 게이트고메코리아(GGK)를 설립하고 30년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3월 GGK의 공장에 화재가 발생했고, 대체 업체에서 기내식을 납품받으려 했지만 포장·운반 과정에서 차질이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앞뒤 맥락을 들여다보면, 박 회장의 무리한 자금 조달 시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LSG는 아시아나항공이 재계약 조건으로 금호홀딩스(금호고속)가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구매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하자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박 회장은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LSG에 수차례에 걸쳐 원가 공개를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면서 "품질 향상을 위해서 신규 업체와 기내식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업체 변경 이유를 해명했다.

하지만 LSG는 "모든 부분에서 아시아나와항공과의 계약 조건을 준수했고, 원가 가격도 항상 계약에 명시된 사항을 적용해 왔다"며 "여러 차례 스카이트랙스 어워드를 수상하고 표준 품질 평가기관으로부터 '우수' 등급을 받는 등 품질 상 문제는 전혀 없다"고 박 회장의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박 회장보단 LSG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GGK를 설립하던 시기에 하이난그룹이 금호홀딩스의 BW를 1600억원 가량 인수하는 투자 내용을 발표한 점에서 상황이 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또 박 회장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42%를 사들여 금호그룹을 재건하는 데 매진하던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5월 광화문 사옥을 4180억원에 매각했다. 사진은 광화문 사옥. [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가 시발점이 된다. 당시 박 회장은 '제2의 도약'을 선언하며 무리한 인수합병(M&A)를 추진했다.

박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에 6조4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 중 절반에 달하는 3조5000억원은 재무·전략적 투자자로 마련했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 자금 마련 역시 재무적투자자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당시 맺은 '풋백옵션(주식 등 자산을 인수한 투자자가 일정 가격에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을 이행할 자금이 없었고, 주요 계열사 등 그룹 전체는 부실화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박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재매각했다. M&A 과정에서 회사채를 발행하며 자금 마련을 도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현금 흐름이 악화되며 2009년 말 기업재무구조개선 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다. 2012년에는 그룹 모태인 금호고속을 매각했다.

이후 박 회장은 그룹 재건을 꿈 꾼다. 박 회장은 가장 먼저 금호산업을 되찾는데 집중했다. 금호산업이 지배구조 정점에 서 있는 만큼 금호산업 인수가 마무리되면 그룹 경영권을 회복하게 된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의 재인수를 위해 2015년 10월 특수목적법인(SPC)인 금호기업(현 금호홀딩스)을 설립, 지배구조를 '박 회장→금호기업→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이어지도록 재편했다. 이후 2017년 재인수한 금호고속과 금호터미널과 합병된 금호기업은 금호홀딩스로 이름을 바꿨고, 4월에 금호고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하지만 금호타이어 인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박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우선협상자가 제시한 조건대로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을 앞세워 금호타이어 인수를 추진했다. 자금이 부족한 박 회장은 채권단에 재무·전략적 투자자를 확보할 수 있는 컨소시엄 구성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중국 타이어 업체 더블스타에 넘어갔다.

박 회장은 올해 항공(아시아나항공)·건설(금호산업)·고속(금호고속) 사업을 중심으로 한 삼각축으로 그룹을 재건하고 내실경영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미 적잖은 자금 출혈을 겪은 만큼, 각 계열사의 재무 부담이 큰 상황이다. 특히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자금줄 역할은 한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1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약 600%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자율관리 대상'에서 '심층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아시아나항공의 차입금은 ABS 6000억원, 은행권 채무 3000억원, 항공기 금융리스 3000억원 등 약 1조7500억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4월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약 10년간 사용한 광화문 사옥을 4180억원에 팔았다. CJ대한통운 지분을 935억원 가량 처분했다. 또 자산유동화증권(ABS)을 2차례 발행해 약 3000억원을 마련했고 전환사채(CB) 발행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걸림돌이 존재한다. 2019년부터 비행기 리스를 부채로 산입하는 새 리스회계기준(IFRS16)이 도입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전체 비행기 중 60% 이상이 리스로 운용한다. 단순 계산으로 새 리스회계기준이 적용되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1000%에 육박하게 된다. 만약 부채비율이 1000%를 넘길 경우 빌린 원금을 즉시 갚아야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은 그룹 재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자금줄로 사용해 왔고, 이번 기내식 대란은 아시아나항공을 앞세워 무리하게 자금을 확보하려다 발생한 예견된 사고"라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심각하게 높아진 상황에서 이번 논란까지 더해지면 그룹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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