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취업준비생들은 필기시험의 고난이도, 채용 과정의 투명성 확보에 대한 불신 등을 토로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4대 시중은행 관계자들을 취재했다. <사진제공=각사>

[이뉴스투데이 배승희 기자] “제가 마루타가 된 것 같아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은행권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26)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김씨가 이같이 말하는 이유는 최근 은행연합회가 제정 예고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안)’(이하 모범규준)의 ‘필기시험 도입’ 항목 때문이다. 김씨는 “‘은행 고시’가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앞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가 모범규준을 마련한 이유는 채용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고 은행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은행연합회 회원사 19개 은행이 모범규준을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은행권 취준생(취업준비생의 줄임말)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취준생들이 우려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필기시험의 난이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는 점과 “과연 모범규준으로 객관성과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

은행권 취업을 준비중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김용환(왼쪽)씨와 경영학부 도준석씨.<사진=배승희 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도준석(25)씨는 “올해 상반기에 채용을 실시한 은행들의 필기시험이 예전에 비해 월등히 어려워졌다”며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풀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금융계열 전공자가 과연 맞출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도씨는 “작년에는 주변 친구들 중 10명이 은행권 필기시험에 붙었다면, 올 상반기에는 2~3명만이 합격한 상황”이라며 “필기 난이도 때문에 다들 좌절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도씨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은행권에서 올해 신규채용을 확대한다는 뉴스를 접해도 반갑지만은 않아요. 하반기에 치러질 필기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은행에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줬으면 좋겠어요.”

도씨와 함께 은행권 취업을 준비 중인 김용환(25)씨는 모범규준의 투명성과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김씨는 “필기시험을 정량화한다고 갑자기 은행의 채용절차에 신뢰가 생기진 않는다”며 “기존에 필기전형을 계속 치러왔던 은행들에서조차 채용비리가 있지 않았느냐”며 반문했다.

도씨 역시 “필기시험 결과를 조작할 수도 있고, 여전히 면접 과정에서 청탁을 받은 특정인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모 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사진=배승희 기자>

은행권 취준생들은 보다 실질적인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실제 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정말 채용 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될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이에 대해 복수의 은행권 관계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은행 관계자는 필기시험의 난이도를 걱정하는 취준생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은행권 취업을 희망하는 친구들은 최소한 신문의 경제면을 꼼꼼히,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일반 회사의 시사상식을 준비하는 수준으로 가장 이슈가 되는 부분만 골라 본다면,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시시각각 벌어지는 금융 이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깊이가 생길 것입니다.”

이 관계자는 “현직 은행원들 역시 매일 금융 이슈를 공부하고 있다”며 “그래야만 고객이 궁금해 하는 사항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일부 은행들의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기존 채용방식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며 “우리는 채용 전반을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고, 외압을 줄 수 없도록 채용위원회를 따로 만들어 신뢰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A은행의 경우 각 전형에서의 평가는 태블릿 PC로 현장에서 즉시 입력하게 돼있다고 한다. 한 번 입력하면 수정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점수조작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B은행 관계자는 “모범규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며 “채용 단계는 비슷한 구조로 가겠지만 실제 채용 과정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우리도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C은행 관계자 역시 “하반기 채용 인원의 규모 정도만 계획하고 있을 뿐 세부사항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공정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의 경우 “우리는 예전부터 필기시험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하면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서류, 필기, 1차 면접, 임원면접 각 전형이 전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며 “서류, 필기 등은 외부 전문업체에 위탁해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올 하반기에는 작년 수준(250명)보다 더 확대 채용하는 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고객과 동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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