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대 그룹 정책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당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하현회 LG 사장(당시),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당시)[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시한 ‘재벌의 자발적 개혁’ 데드라인인 3월 주주총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주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주가 전환 계획을 밝힌 대기업들은 3월 주총을 통해 체제 전환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와는 달리 삼성, 현대차 등은 아직까지 개편 작업이 더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 경영진과 간담회를 갖고 “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국민들의 삶이 오히려 팍팍해진 건 큰 문제가 있다”며 경제 문제에 기업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법이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며 “기업들이 스스로 달라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행정력 활용 이전에 기업에게 이른바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지만 한국 경제와 우리 기업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며 당초 작년 연말까지 데드라인을 설정했으나 올해 3월 주주총회로 기한을 조정했다. 그는 주요 대기업들이 주총에서 발표할 자발적인 개편안을 살펴보고 개편이 미흡하면 올해 하반기에 강한 제재와 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기업들은 김 위원장이 강조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4대 그룹 정책간담회 이후 현재까지 소유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거나 추진한 곳은 10개 집단이다. 5대 그룹 중에서는 현대차, SK, LG, 롯데 등 4개 집단이, 6대 이하 그룹에서는 현대중공업, CJ, LS, 대림, 효성, 태광 등 6개 집단이 각각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거나 추진했다.

주요 개편안을 보면 CJ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바이오, 생물자원, 식품, 소재 등 4개의 사업부문을 바이오와 식품으로 통폐합했다. 이어 12월에는 CJ대한통운 지분 20.1%를 추가로 들여 단독 자회사 구조로 전환했다. 또 CJ대한통운과 CJ건설을 합병하고 CJ오쇼핑이 CJ E&M을 흡수합병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기로 했다.

LG는 LG상사 지분 26.29%를 지난해 11월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해 정부의 기업 개혁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LG상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의도도 관측된다.

태광그룹은 지난해 12월 친족 소유의 계열사를 7개에서 1개로 줄인다고 밝혔다. 또한 IT 계열사인 티시스를 사업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나누고 오는 4월 티시스 투자 부문과 한국도서보급, 쇼핑엔티를 합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오는 4월 3사의 합병이 마무리된 이후 추가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대림그룹은 지난 1월 신규 계열 거래를 단절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없애 지배구조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개편한다고 밝혔다. 대림그룹은 올해부터 오너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신규 계열 거래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올해 1분기 안에 순환출자구조도 해소할 예정이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 해소를 위해 모든 계열사 내부거래를 점검하고 감시하는 내부거래위원회를 이사회 내 위원회로 공식화한다.

롯데지주는 지난 1월 롯데지알에스, 한국후지필름, 롯데로지스틱스, 롯데상사, 대홍기획, 롯데아이티테크 등 6개 계열사의 분할 합병 안을 발표했다. 이어 27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이 합병 안이 결의됐다. 이번 합병으로 그룹에 대한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효성은 지난 1월 이사회에서 투자 부문 존속회사와 사업부문 4개 신설회사로 인적 분할해 존속회사를 올해 6월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SK케미칼은 지난 1일 인적 분할을 단행하고 SK디스커버리와 SK케미칼로 회사를 분할했다.

반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 파도에 좀처럼 올라타지 못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삼성은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지배구조 개편 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에 삼성물산의 전자 지분 매입이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전자 지분 매각, 3개 계열사의 자사주 활용 방안 등이 향후 개편 방안으로 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이사회를 강화하고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등 경영 쇄신 안을 마련하는 데는 일부 성공했지만 결국 지배구조 개편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7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 소유 현황’에서 현대차그룹은 삼성전자 등과 함께 순환출자를 보유한 기업집단으로 명시됐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들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은 총수 일가의 지배권 유지에도 순환출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편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도 연관돼 있어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차 지분 20.78%를, 현대차가 기아차 지분의 33.88%를, 다시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8%를 소유하는 형식이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현대모비스가 대주주다.

이런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정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16.8%를 매수해야 하지만 4조5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다수 대기업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부응하기 위해 분주하다. 일부 편승하지 못한 기업들도 개편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와 중국의 무역 보복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기업이 노력하는 만큼 정부도 기업의 원활한 경영을 위해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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