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폭탄으로 인해 기업의 맥이 끊기는 상황이 반복되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들은 파격적이라 할 만큼 가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 부담을 낮추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기업 경영 환경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요동치는 가운데 가업 승계를 앞둔 국내 기업들이 상속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가업 승계 공제 요건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다양한 가업 승계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 행보다.

정부는 세법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300억원 한도 공제 대상을 ‘가업 15년 이상 영위’에서 ‘20년 이상’으로, 500억원 한도 공제 대상을 ‘가업 20년 이상 영위’에서 ‘30년 이상’으로 각각 조정했다. 예년보다 5년에서 10년가량이 늘어난 것이다.

가뜩이나 높은 상속세율 부담을 안고 있던 국내 기업들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상속세 규정상 대주주는 최고세율 50%에 최대 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해 최고 65%의 실효세율을 적용받는다. 이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최고 세율인 26.3%보다 두 배 이상 높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50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7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에서 중소기업의 72.7%가 상속·증여세 부담 호소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가업 승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요건이 까다롭다 보니 혜택받는 기업은 소수다. 공제 제도 요건을 보면 ▲직전 3개 연도 평균 매출액 3000억원 미만 ▲피상속인 가업 10년 중 5년 이상 대표이사 재직 ▲상속 개시일 전 2년 이상 상속인 가업 종사 ▲가업상속 후 10년간 정규직 근로자 인원 유지 등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조차도 “가업상속 공제제도의 실질적인 이용은 1년에 70건이 채 안된다”고 말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을 물려받은 2세가 상속세 부담으로 인해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콘돔 제조사이자 한때 세계 1위였던 ‘유니더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성훈 유니더스 대표는 창업주인 선친 김덕성 회장이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나면서 물려받은 100억 원이 넘는 회사 주식에 대해 5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부과 받았다. 김 대표는 한때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상속세를 낼 재원이 부족했고 결국 지난해 11월 회사 보유 주식 중 지분율 34.88%에 해당하는 300만주를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외 1인에게 매각했다.

국내 1위의 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농우바이오’ 역시 상속세 부담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196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2013년 창업주인 고희선 회장이 별세하면서 상속세 폭탄을 맞았다. 당시 매출액은 676억이었는데, 유족들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1000원이 넘었다. 상속세를 낼 돈이 없었던 유족들은 결국 회사를 매각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2008년 타계하면서 유족들에게 약 15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마찬가지로 유족들은 돈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최근 가업 승계를 마친 한 중견기업 대표는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등 승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수백, 수천억원의 상속세를 내라는 것은 기업을 팔아넘기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업계의 현실을 전했다.

상속세 폭탄으로 인해 기업의 맥이 끊기는 상황이 반복되는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들은 파격적이라 할 만큼 가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 부담을 낮추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는 ‘2018년도 세제 개정안’에 중소기업 상속을 촉진하는 세금 우대 방안을 넣기로 했다. 일본은 중소기업 경영권 승계시 상속 주식의 3분의 2까지 적용하는 상속세 유예 혜택을 상속 주식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 상속 후 5년간 직원 80%를 고용해야 적용받을 수 있는 상속세 납부 유예 조건도 완화한다. 아울러 폐업 위기에 처한 130만여 개 중소기업을 구하기 위해 향후 10년간을 ‘가업승계 정책 집중 시행 기간’으로 정하기로 했다.

미국과 독일 등 주요 선진국도 상속세 부담 낮추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상속세 폐지와 법인세율 인하 등의 내용을 담은 세제개편안을 공개했다. 독일도 한국에 비해 완화된 기업 규모, 지분율, 피상속인 사업 영위기간 등을 적용한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OECD 35개 회원국 중 캐나다, 호주, 러시아 등 13개국은 상속세를 아예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들이 상속세 부담 완화 정책을 펴는 것은 전체 세수 중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 안팎에 불과하고 기업이 폐업을 하게 되면 기술발전 중단, 일자리 감소 등 악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주요 선진국과 한국이 정반대 행보를 걷다 보니 각 국가 내 장수기업 수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은 일본이 3113개, 독일 1563개, 프랑스 331개 등이었다. 반면 한국은 200년은 고사하고 100년 이상 된 기업조차 단 7개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의 축인 중소·중견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가업상속 공제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독일 가업상속공제제도의 동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가업상속 공제 실적이 저조한 만큼 엄격한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동원 부연구위원은 “공제 대상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보다 확대하는 것이 규모 면에서 효과적일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상속세는 중소·중견기업의 활성화와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기업 선순환을 위해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오현진 중기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장도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닌 기술과 경영의 대물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