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미 상무부 232조 발표 대응 민관 합동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 공세에 맞서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서자 애꿎은 한국이 연이어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이 미‧중간 고래 싸움에서 새우등 터지는 이른바 ‘넛 크래커(nut cracker)’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반덤핑 조사 결과 한국과 미국, 대만에서 수입되는 스티렌의 저가 판매로 인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며 13일 예비 판정을 내렸다. 스티렌은 폴리스틸렌, 합성고무, 플라스틱, 이온교환 수지 등을 제조하는데 광범위하게 쓰이는 유기화학 공업 원료로 지난 2013년 이후 한국과 미국, 대만산 스티렌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중국의 스티렌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5월 수입제품 증가로 중국 내 가격이 하락하는 등 큰 손실을 입고 있다며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고, 이에 중국 상무부는 지난해 6월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조치가 중국 내 제조업체들의 조사 요청과는 별개로 지난달 미국이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린 데에 대한 보복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시 중국은 미국의 태양광과 세탁기 세이프가드를 둘 다 문제 삼으며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가 1994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세이프가드 협정 관련 조항에 규정된 미국의 의무에 상반된다고 본다"고 반발했다.

미국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 상무부는 중국을 포함한 12개 나라의 철강에 관세나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쿼터(할당) 제안이 담긴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를 지난 16일 백악관에 제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이 덤핑에 의해 전멸하고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의 제안 중 하나는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한국·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 12개 국가의 철강에 대해 53%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번 미 상무부의 조치에 대해 왕허쥔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장은 “미국의 최종 결정이 중국의 국익에 영향을 준다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사실상 무역보복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미·중간 무역보복전이 계속되면서 두 국가의 수출 효자국인 한국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 상무부의 스티렌 예비 판정은 중국의 타깃으로 풀이되는 미국 업체뿐만 아니라 한국 업체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9.2%~10.7%의 관세가 부과된 미국과 5%가 부과된 대만과 함께 롯데케미칼 등 한국 업체의 스티렌에 7.8%∼8.4%의 관세가 부과됐다. 미 상무부 보고서의 철강 제재 대상 국가에도 중국과 함께 한국이 포함됐다. 미·중 무역보복 싸움에 한국이 연이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은 30%를 넘을 만큼 절대적이다. 무역보복전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 산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보복전이라는 시각을 희석시키기 위해 한국 등의 국가를 들러리로 끼워 넣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산 대두를 무역 보복의 타깃으로 삼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중국 상무부가 지난 1월부터 미국에서 수입되는 대두에 대해 반덤핑·반보조금 관세 부과를 포함한 무역구제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9일 보도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대두의 3분의 1이 중국으로 가는 만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대 지지기반인 미국 농가에 직격탄을 날릴 조치로 풀이된다. 미·중간 무역보복전 장기화를 우려하는 한국 산업계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미·중간 무역보복전 역시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애꿎은 한국 업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WTO에 제소하거나 미국을 제외한 강대국들과 국제적인 공조 태세를 명확하게 세우는 등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명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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