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소재 기업은행 본사(왼쪽)과 서울 서대문 소재 농협은행 본사(오른쪽) <이뉴스투데이DB>

[이뉴스투데이 김민석 기자] 가상화폐 실명제가 시행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은행창구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30일부터 가상화폐 실명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가상화폐를 통한 비정상적인 자금거래를 막고 외국인과 미성년자의 서비스를 제한하고자 마련됐다.

이에 신한·기업·농협·하나·국민·광주은행 등 6개 시중 은행은 실명제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30일을 기해 실명제 전환에 돌입했다.

하지만 시행 16일이 지난 현재 가상계좌를 발급 중인 은행의 실명제 전환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와 제휴하고 실명제 전환을 시작했다. 기존에 업비트에서 가상화폐를 거래하던 고객 57만여명이 대상이었다.

기업은행은 13일 16시 기준으로 발급한 실명 계좌의 수가 10만7000좌라고 밝혔다. 18%의 전환율이다.

농협은행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코인원과 제휴하고 실명제 전환을 공고했다. 빗썸 거래자 90만명, 코인원 거래자 15만명이 잠재적 고객이었다.

13일 기준 농협은행에서 빗썸 거래자에게 발급된 계좌는 10만좌였다. 이는 11%의 전환율이다. 또 코인원에는 13%인 2만좌가 발급됐다.

신한은행은 코빗과 제휴를 맺고 실명 계좌를 제공하지만 코빗 측에서 거래자(가입자)수를 따로 밝히고 있지 않아 통계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12일 정오 기준 신한은행의 발급 계좌는 2만6000좌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아 높은 수치는 아닐 것으로 관측된다.

신한은행은 본래 빗썸과도 제휴를 맺고 있으나 빗썸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자 무기한 연기해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나·국민·광주은행은 아직 제휴를 맺은 거래소가 없다. 이와 관련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현재 가상화폐 계좌를 제공하고 있지 않으며 추후에도 특별한 발급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전체 300만명으로 추산되던 가상화폐 거래자 수를 고려하면 현재 실명제 전환율은 11%에 불과하다.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사진출처=연합뉴스>

아직 시행초기지만 저조한 전환율을 보이는 실명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김현기 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 역시 빗썸과 업비트에 계정을 두고 가상화폐 거래를 하고 있는데 아직 실명제 전환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실명제 전환 없이도 기존 거래자는 여전히 입·출금이 가능하고 거래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며 "실명제 전환이 필요한 거래자는 신규 자금의 투입을 원하는 사람인데 현재 가상화폐가 하락해 있는 상황에서 돈을 넣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신규 거래자의 계좌 발급이 활발한 것도 아니라 기존 거래자가 신규 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 만큼 가상화폐 가격의 상승이 없다면 실명제 전환율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정부가 가상화폐를 화폐인지 상품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전환율의 상승은 물론 가격의 상승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가상화폐 실명제를 시행하는 은행 가운데 농협은행을 제외한 은행들은 신규 가입자의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에 농협은행과 제휴를 맺은 빗썸과 코인원은 신규 거래자를 모집하고 있으나 거래소 업비트는 기업은행의 관망조치로 신규 계좌 발급이 막혀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가상화폐 신규 거래자 투입 여부는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거래자 모집이 불가능해 거래가 중단된 사례도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피아는 신규 원화입금이 불가능해지자 6일 서비스 일시 중단을 선언했다.

코인피아는 홈페이지에 "2016년 말부터 현재까지 본인확인 실명제 연동을 은행 등에 요청했으나 기존 시스템 안전화 등을 이유로 은행과의 본인확인 실명제 연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명확한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화 입금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것은 고객들의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 결론 내리고 2월 6일 0시부를 기해 거래를 중단한다"고 게시했다.

낮은 전환율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등장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정부에서 펼치는 실명전환에 대해 회원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관련 정책에 대한 홍보나 공보가 적다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은행, 거래소 측은 각자 실명제 전환 홍보나 공보에 대한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단지 계좌 발급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곳"이라며 "실명제를 홍보할 의무는 없다"고 강조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한 관계자는 "실명제 전환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거래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당국 측에서도 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실명제에 대한 홍보 주체가 없는 것 같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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