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람을 챙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나를 따르겠는가. 안팎의 비판이 있겠지만 앞으로 정치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내 사람을 ‘나 몰라라’식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중략) 당사자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뺏어 내 사람 자리를 보전해주기도 한다”

정치부 기자 시절 한 중진 의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 최근 상황과 오버랩되며 되새김질 된다. 어느 선거에서든 승리자는 ‘전리품’을 챙기게 마련이다. 사실 전리품을 나누는 것도 선거의 ‘묘미(?)’다. 그러나 선거에 참여한 스텝 모두 전리품을 나누어 갖지 못한다. 수요는 많지만 공급 즉, ‘자리’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측근들 간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도 또다른 선거 풍경이다. 이렇다보니 당선자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나름 ‘의리’의 표현이긴 하지만 결국 권력의 힘을 이용해 온전한 자리를 빼내어 측근에게 나눠준다.

‘코드 인사’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통치자가 자신의 정책을 이해하고 국정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측근을 중용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권 안정과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한 ‘코드 인사’는 자연스러운 통치행위다. 문 대통령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MB정부’, 그에 앞서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비록 정치적 비판 소재로 이용되고 있지만 국회의원 자신도 ‘코드 인사’를 하지 않는가.

문제는 무조건적 ‘측근 챙기기’다. 직무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내 사람 챙기기’에 애꿎은 사람까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업무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인사라 할지라도 ‘표적’이 되면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무척이나 불편하다. 한 개인이 아닌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사를 보면, 과거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현 정부는 과거 정부 ‘낙하산 인사’를 적폐로 규정, 공공기관장 인적 청산에 나서면서 지지를 받았다. ‘전문성을 우선시하겠다’는 통차자의 언급은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러나 자기사람을 챙기기 위한 인위적 물갈이도 서슴지않고, 해당 분야 전문성도 없는 인사를 공공기관 수장에 임명하는 등 스스로 ‘적폐’를 자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수장들이 임기를 남겨두고 줄줄이 사임한 데는 정부 교체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윗선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말들도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A 공공기관장의 자신 사퇴에 대해 “본인(A)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잘 마무리 짓기를 원했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모 공기업 사장)”는 증언도 나온다. 해당 공기업 사장은 임기 동안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공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윗선의 압박’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의 ‘인적청산’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전문성도 없는 사람에 자리를 내어준 것은 누구를 위한 ‘측근 챙기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최근 김형근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임명은 전형적인 ‘측근 챙기기’용 낙하산 인사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전임자인 박기동 사장이 지난해 채용비리와 뇌물수수 의혹에 휩싸여 자진사퇴한 자리다. 김 사장은 충북도의회 의장, 더불어민주당 비상근부대변인을 거쳐 원내대표 비서관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가스안전공사와 관련해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인사다. 인사청문회 대상 자리였다면 김 사장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여러 장관 후보자가 도덕성을 포함해 전문성 결여로 결국 낙마하지 않았던가. 전문성과 안전사고와의 상관성을 짚기는 어렵지만 그간 세월호 사태 등 수많은 안타까운 사고가 항상 ‘인재(人災)’로 귀결됐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직무 능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게 국민 시각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국민 안전을 정부 핵심 국정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신년기자간담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정치적 레토릭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치인 출신 공공기관장은 김 사장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에 이미경 전 의원이 선임됐고,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는 시민사회운동가 출신 김성주 전 의원이, 한국도로공사 사장에는 이강래 전 의원이 임명됐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오영식 전 의원이 코레일 사장에, 이상직 전 의원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오를 것이란 ‘낙점설’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전문성을 따지기는 구차할 뿐이다. 과연 이들이 해당 분야에서 20~30년의 경력을 쌓은 베테랑과 보수화된 조직을 온전히 장악하고, 내부 기강을 바로 세워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임기 동안 ‘바지 사장’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며, 국민혈세만 축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치인 출신이 공공기관장에 오르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치부 기자로 오래 활동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총선이나 지방선거 출마를 위한 ‘이력 쌓기용’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선거 가도를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수억원대 연봉으로 넉넉한 선거자금을 마련할 수 있고, 공공기관장 대외 활동 명분으로 지역구 지지층 확대도 용이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가스안전공사 소재지가 충북이고, 이번에 취임한 김 사장의 정치적 기반 역시 충북인 점은 단순히 공교롭다고 넘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정치인 출신 공공기관장들이 모두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총선이든 지방선거 출마는 개인 자유다. 그들을 임명하는 것도 통치자의 권한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인 출신이라도 그 역할과 책임에 충실하면 된다.

현 정부가 과거 ‘낙하산 인사’를 적폐로 규정한 이유는 전문성을 높여, 조직 누수를 막아 국가 공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국민 눈높이다. 현 정부가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측근 챙기기’를 위해 직무 관련성도 없고, 전문성도 결여된 인사를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엄중한 자리에 임명하는 것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와 매칭 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내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더 잘 어울린다. 게다가 누가 봐도 출마를 앞둔 인사를 공공기관장에 임명하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한다면서 또다른 적폐를 낳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현 정부 개국 공신이라면 자리를 달라고 ‘떼쓰기’ 보다는 ‘현 정부 성공’을 위해 양보하는 대승적 결단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더욱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는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어느 공공기관 자리가 비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