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세정 기자] 한국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유난히 고단한 한 해를 보냈다. 창사 5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지만, 중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미국 등 주요 시장의 침체, 노사 갈등 등 악재가 쉴 틈 없이 안팎으로 터졌다.

새해까지 단 사흘 남았지만, 현대차그룹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 탓에 내년도 경영계획을 아직 내놓지 못했다. 설상가상 정부는 이달 안으로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보여달라며 압박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방위적 위기 돌파를 위해 미래차 시장 비전을 강조한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새로운 반세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올 들어 11월까지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658만9489대다. 당초 올해 목표로 설정한 글로벌 825만대 판매를 달성하려면 166만대를 더 팔아야한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508만대, 317만대의 글로벌 판매 목표를 세웠지만, 지난달 기준 달성률은 81%(409만6332대), 79%(249만3157대)에 그친다. 지난해 12월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80만여대인 점을 고려하면 연간 판매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기아차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글로벌 핵심 시장인 중국과 미국이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사드 배치 이후 형성된 중국내 반한감정에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차의 경우 중국 사드 보복이 가장 두드러진 2분기 판매량은 전년 대비 60% 넘게 빠졌다. 기아차도 같은 기간 40% 넘게 판매량이 감소했다. 사드 여파는 3분기까지 지속됐다. 11월부터 한중 관계가 완화됐고 더디지만 판매량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미국 시장 부진은 글로벌 시장 트렌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탓이 컸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강세 속에서 세단 라인업 위주로 판매 라인업을 구축한 현대·기아차의 11월까지 미국 누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11% 가량 뒷걸음질쳤다.

안방 시장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준대형 세단 그랜저와 중형 SUV 쏘렌토, 소형 SUV 코나·스토닉 등 신차 효과와 주력 모델 인기에 힘입어 11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6% 늘었다. 내수 점유율도 70%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노조와의 갈등골은 점점 깊어지는 모양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4월 임단협 상견례를 치른지 8개월 만인 이달 19일 가까스로 1차 잠정합의안을 도출해 냈다. 하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노사는 '연내 타결'을 목표로 27일 교섭을 전개했지만, 결국 파행을 맞게 됐다. 현대차 임단협이 해를 넘긴 것은 1987년 노조 창립 이래 30년 만에 처음이다.

현대차는 올해 노조가 벌인 18차례 파업으로 6만2600여대에 생산 차질과 1조 3100억 원의 매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차 노사 관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아차 노조도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노사는 이날 25차 본교섭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임단협 교섭은 내년 재개된다.

기아차 노조는 사측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27일 4시간 부분파업을 단행했다. 29일에도 6시간 부분파업을 펼칠 계획이다.

불안정한 시장 환경에 둘러싸인 현대차그룹은 2018년 경영계획의 큰 틀만 잡았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다. 내달 2일 예정된 정몽구 회장의 신년사에서 판매목표를 공개하고, 구체적인 계획은 추후 보완할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개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자발적 개혁의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연말이 다가오면서 현대차그룹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꼬집는 발언을 했기 때문. 다만 김 위원장이 "연말까지 지배구조 개편 밑그림과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한 만큼, 현대차그룹이 개편안의 뼈대만 우선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현대차그룹은 이날 총 310명 규모의 임원 승진 인사를 단행, 위기 극복 의지를 다졌다. 회사는 이번 인사에 대해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대비해 내실경영을 더욱 강화하며 실적 위주의 인사 원칙을 철저히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연초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세운 경영방침인 '내실강화, 책임경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번 인사는 커넥티드카 및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등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기술 분야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연구개발·기술 분야 승진자는 총 137명으로, 지난해 133명보다 4명 늘었다. 전체 승진자 중 연구개발·기술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44.2%로, 전년 대비 6%포인트나 확대됐다. 최근 5년 내 최대 비중이다.

또 전체 부사장 승진자 15명 중 루크 동커볼케 현대디자인센터장 부사장, 이종수 현대·기아차 성능개발센터장 부사장, 탁영덕 현대·기아차 상용연구개발담당 부사장 등 총 8명은 연구개발·기술 분야에서 배출됐다.

임원 인사 규모가 4년 연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기술 분야의 승진자가 확대된 것은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강한 의지를 대변한다. 현대차그룹 임원 인사 규모는 2015년 433명, 2016년 368명, 2017년 348명, 2018년 310명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핵심 기술 분야의 전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수석연구위원도 새롭게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중장기적으로 리더 후보군을 육성해 성장 잠재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사장 승진을 늘렸다. 지난해 부사장 승진자는 11명이었다. 올해는 36.4% 늘어난 15명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외부 환경변화에 더욱 신속히 대응하고 미래차산업을 선도하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라며 "현대차그룹은 고객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고객 최우선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임직원 모두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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