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건설이 라오스 메콩강 지류 세노이에 건설한 초대형 댐 전경.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해외건설 부진과 적자에 시달려온 플랜트업계 CEO들이 이렇다할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현장에서는 EPC 만을 강조하는 탁상공론은 옳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PC란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사업자가 설계부터 부품·소재 조달, 시공, 시운전, 인도까지 일괄 공급하는 것을 뜻하는데, 엔지니어링(E) 능력을 키우면 자재 조달(P)과 시공(C) 부분에서의 경쟁력은 저절로 따라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공사액은 증가했으나, 전반적인 수요가 급감하며 해외건설 수주액은 36.7% 감소했다.

2002~2006년 플랜트 수출은 해외시장 다변화로 평균 수주액이 89억달러를 유지했지만 이후 중동을 비롯한 해상플랜트에서 경쟁 과열 현상이 일어나 2010년 716억달러 수주를 기록한 뒤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꾼 셰일(shale) 에너지도 이 무렵 등장해 플랜트는 더이상 '신성장동력'이 아닌 어떻게든 손실을 줄이는데 매진해야 하는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이에 한국플랜트산업협회는 플랜트 수주 확대를 위한 상생협력 포럼을 개최하고 불황 극복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1일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포럼에는 현대건설, SK건설, GS건설, 대림산업, 삼성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등 국내 주요 플랜트 수출기업 임직원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국내플랜트업계을 이끄는 CEO들은 해외 수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이 하나의 팀을 이뤄야 한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플랜트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앞으로 국내기업이 해외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개념을 도입한 EPC 프로젝트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사장의 이 같은 주장은 생산성 혁신을 염두한 것이지만 엔지니어링 등 원천 기술 부족이 해외 수주 부진 이유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플랜트산업협회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동대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주요 EPC 기업 CEO 및 임직원, 산업통상자원부, 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등과 함께 '플랜트 EPC 상생협력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박 사장은 지난 4년 동안 삼성엔지니어링에 전자부분 인사를 보직 이동시켜 제조업 개념의 회사로 전환시켜 오고 있지만 국내 건설업 부진의 이유는 기술적인 부분이 가장 가장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엔지니어링이나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주를 따와도 기본설계가 아닌 실시설계 단계에 그치는 것이 많다"며 "엔지니어링(E) 부분에서 경쟁력을 먼저 갖춰야 일감(C)이 따라 오는 시스템임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설산업은 크게 기획9·타당성, 프로젝트 관리, 개념·기본설계, 상세설계, 구매조달, 시공, 감리, 유지보수의 총 8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국내건설사들은 이 가운데 조달과 시공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건설 전문지 ENR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엔지니어링 능력을 갖춘 업체들은 연평균 7.1%의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미국이 매출규모 43%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최근 5년간 90%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이며 약진하고 있는 반면 국내 건설산업 전방 밸류체인의 기업당 평균 매출액은 4억 달러로 글로벌 평균인 9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저부가가치 업무영역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산업구조라는 점을 시사하며 평균 매출액도 3억9210만 달러로 전체 평균인 9억 2580만 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기업수로는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6개로 집계됐으나, 총 매출액은 23억5230만 달러로 전체 150개 기업 매출액의 2%에 그쳤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가 '하나의 코리아' 강조하는 것도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실무적으로는 고부가가치 벨류체인을 구성하는 엔지니어링 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 건설산업의 원천기술 부재는 비단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 간 국내 건설기업이 참여한 국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는 시공 등 저부가가치 영역에 집중되어 있고, 기본설계 등 고부가가치 영역은 선진국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엔지니어링보다는 시공에만 집중한 것이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과 관련,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는 "그 부분이 우리 건설업계가 극복해 나가야 할 길"이라며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큰 틀에서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된 자리"라고 말했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한국이 건설한 초고층빌딩도 실제로는 외국 기업 설계에따라 지어지는 것"이라며 "외적 성장에만 몰두하다 모두가 어려워지니 뭉치면 산다는 막연한 주장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나라마다 요구 사항이 다르고 각자가 잘하는 영역이 있다면 그 분야에서 활발한 경쟁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건설업과 제조업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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