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형두 기자] "우리가 카드 혜택을 광고하지만 결국 카드는 지불수단이다. 고객이 카드의 부수적인 포인트에 과도하게 신경과 시간을 쓰는 것이 과연 삶에 득인지, 고객이 잊고 사는 편이 진정한 혜택이 아닌가"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말이다. 정 부회장이 2002년 현대카드 대표를 처음 맡을때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은 1.8%였고, 한 해 적자는 1000억 원에 가까웠다. 당시 9개 전업카드사 가운데 거의 꼴지에 가까웠다. 2003년에는 카드대란 여파로 적자가 6216억 원까지 올라 사상 최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 부회장은 이후 단 7년 만에 현대카드의 시장 점유율을 16.3%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말 그대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한때 카드사 2위 자리를 놓고 다퉜으며, 지금도 체크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 실적(63조 6940억원, 2015년 기준)만 놓고 보면 12.9%로 3위를 고수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기존의 카드업계가 포인트 적립률, 할인에 집중하던 것에서 탈피해 극단적인 발상의 전환을 이뤄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알파뱃 카드 시스템과 세련된 카드 디자인, 혁신적인 CI 개발을 통해서 브랜드 가치를 확 끌어올렸다. 

2007년부터 시작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는 매년 환상적인 라인업으로, 특히 해외 아티스트 팬들에게는 문화산업의 상징이 됐다. 현대카드가 타이틀 스폰서 비용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20억 내외지만, 콘서트로 얻는 광고와 브랜드가치 효과는 수 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이런 현대카드의 혁신적인 도전들은 조직 혁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PPT 전면 금지' 업무 본질에 집중하라 

현대카드 조직 문화의 첫걸음은 '심플리케이션', 간소화다. 핵심에 집중하고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비대화와 관료화를 최소화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 

과거에는 현대카드 역시 여느 회사처럼 불필요한 PPT 작업으로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모해왔다. 이들은 디지털문화에 걸맞게 사무용지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PPT 수정과 리뷰를 금지했다. 

많은 경우 PPT는 시각적인 효과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보고 내용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과도한 자원을 쏟는, 소위 '뽀대'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X가지 법칙’이나 ‘X가지 요소’ 등 PPT 구성을 위한 불필요한 내용도 늘어났다. 이에 현대카드는 혁신적으로 ‘ZERO PPT' 정책을 시작했다. 

ZERO PPT 정책 도입 자료 <출처=현대카드 홈페이지>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위해 심지어 직원용 PC에서 아예 PPT작성 프로그램을 삭제해버렸다. 보고는 워드프로세서, 엑셀, 수기 중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골라 진행했다. 초기에는 직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워드나 엑셀을 PPT처럼 꾸며서 보고하는 편법도 생겼다. 그러나 현대카드는 PPT 금지 정책을 꾸준하게 밀어붙였다. 새로운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자, 형식보다는 내용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업무 속도와 효율성이 높아졌다.  

복장도 캐주얼, 점심시간도 자유롭게

직원들의 새로운 사고를 유도하기 위한 자율적인 기업문화 프로그램도 과감히 실행했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내고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복장 규정을 바꿨다. 정장을 고집하는 보수적인 금융사 드레스 코드에서 벗어나, 청바지와 운동화를 비롯한 비즈니스 캐주얼 스타일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도 개인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1시간을 정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상사 눈치가 보여 저녁에 퇴근하지 못하는 부하직원들을 위해 부서장이 저녁식사 후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금지했다. 휴가 역시 자유로운 활용을 유도하기 위해 부여된 휴가를 50% 이상 쓰지 못한 직원이 있는 부서는 해당 부서장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각 조직별 평균 퇴근시간과 휴가 사용률은 정기적으로 사내 인트라넷에 공지된다. 

지난 7월에는 ‘Nap & Relax Zone’을 새롭게 열었다. ‘Nap & Relax Zone’은 업무시간 중 휴식이 필요한 직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쉬고 싶은 직원들은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면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월간 이용 횟수 등에 제한도 없다.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점심시간 자율화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84%가 “점심시간 자율화가 업무 효율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고, 직원들의 평균 퇴근 시간은 약 2년 전에 비해 30분 이상 빨라졌다. 휴가 사용율 역시 10% 이상 높아졌다.

직급별 근무기간 제도 철폐…능력과 업적만으로 승진 결정

인사제도도 새롭게 개편했다.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기간을 철폐했다. 과거에는 4(사원)-4(대리)-5(과장)-5(차장)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직급별 근무기간 제도가 행정상의 편의와 조직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과감하게 폐지했다.

직원들을 승진연한에 상관 없이 능력과 업적만을 기준으로 평가해 승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진급 후 2년만 지나면 누구나 승진대상이 되며, 능력이 탁월하다면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뒤 빠르면 8년 만에 부장이 될 수도 있다. 다른 회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속도다. 

4-4-5-5의 틀 안에서는 승진자 중 특진이 1% 정도였으나, 재작년에는 15.5%, 작년에는 17.5%까지 올라갔다. 정 부회장은 "조직의 성향을 바꾸기에 충분한 수치이다. 30%를 넘지 않는 한 과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과거 대비 단순 특진자의 수가 아니라 특진연수까지 계산할 예정이다. 그래야 1년이 아니라 2년, 3년을 앞서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스펙에 상관없이 특장점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는 ‘스페셜 트랙’, 퇴사한 직원을 다시 불러들이는 ‘연어프로젝트’, 직원과 부서장이 사내 트레이드 시장을 통해 부서를 배치하는 ‘커리어 마켓’ 역시 현대카드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인사 문화다. 현대카드는 기업문화나 인사제도와 같이 모든 임직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업의 근본적인 부분에 디지털 패러다임을 이식하기 위해 전폭적인 노력을 기울인다고 밝혔다. 

다음 스텝은 '디지털현대카드', 디지털DNA를 이식한다

최근 많은 금융사들이 ‘핀테크’나 ‘빅데이터’를 표방한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고, 자사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 유치에 의욕적으로 나서는 등 활발한 디지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디지털 기술과 이를 활용한 금융서비스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기간 내 성과를 내는 데 몰두한 나머지, 금융 상품과 서비스 주체인 임직원들의 디지털 역량과 감성을 기르고 그에 어울리는 기업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금융사는 아직 부족하다. 

현대카드의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체감도 높은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를 선보임과 동시에, 기업 전반에 디지털 가치를 빠르게 이식하고 있다. 기업의 근본적인 DNA라 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내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문화 자율성은 창의적 사고와 자유로운 소통이 핵심인 디지털 환경에 어울리는 자율적인 기업문화를 지향한다.

현대카드는 이제 한발짝 더 나아가서 챕터2, '디지털현대카드'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현대카드의 정체성이었던 CI 로고 마저 12년만에 전격 교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으로 새 도전을 시작한다. 지난해 NASA출신의 개발자를 영입하고 이익의 20%를 디지털 개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과연 정태영 부회장이 두 번째 기적을 이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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