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유제원 기자]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년새 141조원이 늘어 134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등 은행 대출을 규제하면서 상호금융권이나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유권의 가계 빚 증가세는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16년 4분기중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가계신용은 1344조3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7조7000억원(3.7%) 증가했다.

분기별 가계부채 증가액을 보면 ▲2015년 4분기 38조2000억원 ▲2016년 1분기 20조6000억원 ▲2분기 33조9000억원 ▲4분기 47조7000억원 등이다.

은행권 가계부채는 2016년 하반기 이후 증가폭이 감소하다.

은행권 분기별 증가액은 2015년 4분기 22조2000억원이었지만 2016년 3분기 17조2000억원, 4분기 17조4000억원 수준이었다.

결국 이번 가계부채 증가는 보험·상호금융권 및 새마을금고 판매신용의 증가가 이끌었다.

보험권은 2015년 4분기 3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4조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상호금융권은 같은 기간 6조7000억원에서 7조5000억원으로, 새마을금고는 1조7000억원에서 4조7000억원까지 많아졌다.

특히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주택담보대출은 118조7000억원으로 7조9000억원(7.1%)나 늘었다. 지난해 3분기(3.5%)에 비해 증가율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이상용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장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으로 은행쪽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다보니 아직 제도가 적용안된 비은행권의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며 "상호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의 주담대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계신용 증가액은 141조2000억원(11.7%)으로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가계빚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가계부채의 질마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비은행권 대출은 주로 저신용자, 다중채무자가 많고 상대적으로 고금리로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자인 취약 대출자가 많다. 이 같은 취약 대출자의 비중은 저축은행(32.3%), 카드·캐피털(15.8%), 보험(7.9%), 상호금융(6.5%) 등의 순으로 높다. 향후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면 이들 취약계층의 대출이 부실해져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21일 제2금융권을 소집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라는 경고를 보냈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각 중앙회와 협업해 상반기 중 70개의 상호금융조합을 특별점검할 것"이라며 "가계부채 증가속도를 한자리수로 관리하고 질적 구조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상반기(1∼6월) 중으로 각 상호금융권 중앙회와 함께 70개 상호금융조합 및 새마을금고에 대한 특별점검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작년 4분기(10∼12월) 대출 증가폭이 컸던 보험사, 카드사 등에 대해서도 실태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지만 가계빚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LTV·DTI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설익은 일부 대책은 오히려 규제가 세지기 전에 대출부터 받자는 심리만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 대응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부채 못지 않게 자산도 함께 증가했고 담보대출 비중이 높아 금융기관이 부실화할 위험이 낮다는 이유를 들었다.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도 그간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런 상황에도 정부는 아직 근본 대책인 LTV, DTI 규제는 손대지 않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 상황이라 LTV, DTI를 바꾸지 않겠다”며 안일한 발언을 내놨다. 이에 업계일각에서는 은행에 이어 2금융권 대출을 깐깐하게 하는 규제만으로 가계빚을 잡을 수 있는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한 관계자는“2금융권 대출심사를 강화하면 대출을 못 받는 사람들이 대부업체로 밀려 나갈 수 있다”며 “경기가 계속 나빠지는 상황이어서 취약계층, 저소득층 부채에 정부가 대책마련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간 가계소득 증가율이 1%가 안되는 상황에서 고금리 비은행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적신호”라며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 서민적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 1인당 가계빚이 2600만원을 넘어서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부채의 규모도 작지 않지만, 불어나는 속도 또한 소득증가 스피드를 뛰어 넘고 있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게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과 맞물려 국내 금리가 오를 경우 가계 부실화를 불러와 경제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1인당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인구(5169만6216명)를 감안하면 2600만원을 넘어섰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계빚 규모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증가 규모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다.

가계부채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여신심사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은행 대출을 조이고 있지만 오히려 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현실화할 조짐이다.

비은행권 대출은 저신용자, 다중채무자가 많이 이용하고 비교적 고금리로 대출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계 부실화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 금리가 뒤따라 오를 경우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금리 상승 위험에 노출돼 있는 변동금리 대출금은 700조∼800조원 수준이다. 금리가 1% 포인트만 올라도 추가 이자 부담이 연간 7조~8조원 불어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한계가구는 134가구에서 143만가구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최근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는 점도 금리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해 4년3개월 만에 처음으로 2%대에 올라섰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류 가격이 8.6% 올랐고,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작황 부진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도 8.5%나 뛰었다.

게다가 선행지표 성격을 갖는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는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1월 수입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3.2%, 생산자물가는 3.7% 상승해 2월 이후 물가 급등을 예고하고 있다.

한은은 미국의 기준금리나 물가가 오르더라도 바로 금리가 뒤따라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고려해야 할 하나의 요인일 뿐이지 그것 만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통화 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물가 상승세는 유가나 농축산물 가격 등 공급측 요인에 의한 측면이 커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가계빚 증가세가 지속될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여신심사가이드라인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가계부채 증가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계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경우 소비 여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74%에 달한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08년 143%에서 지금은 174% 수준까지 올라갔다"며 "이 비율이 110% 정도로 떨어져야 소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키워드
#N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