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위카모빌리티 대표.[사진=위카모빌리티]
정태영 위카모빌리티 대표.[사진=위카모빌리티]

중고차 거래가 매년 120만대 이상 이뤄지는 우리나라에서, 소비자는 과연 차량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고 있을까?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중고차 매매 시 차량에 대한 ‘성능상태점검기록부’를 소비자에게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 이 제도는 지난 2001년 4월부터 시행됐으며, 중고차 거래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었다. 그렇다면, 이 성능상태점검기록부는 차량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하며, 그 정보만 믿고 차량을 구매해도 되는 것일까?

기록부는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차량의 기본정보(연식·주행거리·등록번호 등)가 포함되며 둘째, 사고이력 정보는 외판 및 주요 골격 부위의 교환 여부나 판금, 용접 이력을 X(교환), W(판금/용접) 등으로 표시한다. 셋째, 세부 상태 점검은 엔진 및 변속기의 누유, 누수 여부, 작동 상태, 파손 여부 등을 점검하고, 자가진단 결과는 이상 유무 정도만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현재 법적으로 의무화된 진단 항목은 차량의 외관 및 기본 기능에 대한 단편적 정보에 불과하다. 엔진 및 변속기의 자가진단 항목도 단순히 ‘양호/불량’으로만 구분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DTC(고장 진단 코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소비자는 차량에 어떤 오류 코드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른 채 거래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첨부되는 사진은 대개 정면 및 측면 등 두장 이내로 제한되어 있어 차량의 외관 상태를 소비자가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차량 전면부, 측면, 후면, 실내, 타이어 마모 상태, 휠 스크래치 여부 등 시각적 확인이 필수적인 항목들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도색이나 외판 수리 흔적 등은 사진만으로도 확인 가능한 중요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공받지 못한 채 거래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중요한 것은 옵션 작동 여부 또한 차량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내비게이션, 썬루프, 전동시트,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고급 옵션의 정상 작동 여부는 중고차의 시장 가격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의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는 해당 옵션들의 작동 상태가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단순히 ‘작동’ 또는 ‘불량’ 여부만으로 기재되어 있어 소비자가 실제 차량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일부 소비자들은 옵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차량을 고가에 구입하게 되는 피해를 입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는 성능상태점검을 수행하는 진단업체의 구조적인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성능점검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매업체가 성능점검업체 선택하는 구조이다보니, 매매상사의 입김에 따라 진단 결과가 왜곡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일례로, 누유 흔적을 지우거나 사고 이력을 누락하라는 요구가 있을 경우, 진단자는 이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성능상태점검에 대한 ‘기준 부재’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국토교통부는 물론, 관련 협회나 단체에서도 구체적인 진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진단자마다 판단 기준이 달라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A 업체에서는 ‘사고 차량’으로 분류한 차량이, B 업체에서는 ‘무사고 차량’으로 판단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고차 거래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반면, 최근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인증 중고차’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자사 인증 차량에 대해 성능상태점검기록부 외에도, 타이어 상태, 휠 상태, 옵션 작동 유무, 전장 장치의 이상 유무 등 보다 상세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일반 매매상사보다 높지만, 소비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거래할 수 있어 대기업 인증 중고차에 대한 선호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 제도가 도입된 지 14년이 넘은 지금, 단순한 이력 중심의 진단을 넘어 현재 차량의 상태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진단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특히 차량 가격 산정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는 사고 이력뿐 아니라 전기장치, 안전장치, 옵션의 작동 여부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는 표준화된 진단 기준이 절실히 요구된다. 진단 시 차량 외관 및 실내 주요 부위에 대한 최소 10장 이상의 사진 제공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중고차 시장의 신뢰 회복과 선진화를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진단 체계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진단 결과에 따른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 진단자 교육 강화, 독립적인 진단 기관의 활성화 등을 통해 소비자가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중고차 시장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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