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덕형 기자] “여긴 주민들이 공사비나 분담금보다 다른 ‘가치’를 먼저 생각하죠.”

서울 강남구의 한 노후 아파트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재건축에 대한 대화 도중 이같이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서울 전역을 교통, 주변환경, 학군 등을 고려해 5단계로 나눠 판단한다. 이 가운데 1급지는 가장 살기 좋고, 투자 가치가 높은 곳으로 분류된다. 대략 강남‧서초‧용산‧송파구 정도다.

소위 1급지 대형평수, 대형단지 아파트는 우리가 뉴스에서 익히 들어온 평당 억대가 넘어가는 단지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같은 단지들 가운데 많은 곳이 여전히 재건축을 기다리는 노후 아파트라는 점이다.

건설된 지 오래된 탓에 지하 주차장이 없어 이중, 삼중 주차로 불편한 일상을 감수하지만 막상 현관 안을 들어가면 신축 아파트 못지않은 인테리어에 두 눈이 커지게 된다.

취재를 하며 만난 1급지 지역에 사는 중산층 이상 부를 지닌 주민들이 자신의 아파트 재건축을 바라보는 속내는 사뭇 복잡하다.

물질적 여유를 손에 쥔 그들도 주판알을 튕기며 손익 계산에 민감해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과 타지역 재건축 아파트 주민과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은 ‘자부심’과 ‘격’이다. 마치 명품 가방과 옷을 입듯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가 명품 ‘브랜드’이길 바란다. 다소 수익성과 이익에 반하더라도 그들은 더 높은 브랜드 가치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러한 경향이 확산되며 최근 들어 국내 아파트 청약시장에서도 ‘10대 건설사’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과 부동산114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공급된 10대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 총 87개 단지, 청약 1순위 평균 경쟁률은 31대 1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건설사에서 공급한 아파트 평균 경쟁률 9.9대 1에 비해 3배가 넘는 수치다.

청약자 쏠림 현상도 뚜렷하다. 지난해 전체 청약자 112만여명 중 74만여명이 10대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에 청약했다. 전체 공급단지 251곳 가운데 10대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는 87곳(34.7%)에 불과했으나, 청약자 셋 중 둘이 10대 건설사 브랜드를 선택했다.

한때 프랑스 중산층과 대한민국 중산층 기준 차이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결국 이러한 고급화, 브랜드 아파트 선호 현상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이 가지는 이미지에 대한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전국 만 19세~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중산층 이미지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사회에서의 중산층은 재산과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우리 국민 중 10명 중 3명만이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평가했다.

반면 퐁피두 프랑스 전 대통령이 제시한 프랑스 중산층 기준을 보면 먼저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며,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고, 약자를 돕고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등이 제시된다.

물론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고 역사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재건축 시장마저 잠식한 명품 브랜드 바람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배금주의’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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