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금호석유화학]
[사진=금호석유화학]

[이뉴스투데이 염보라 기자]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에 편승한 행동주의펀드발(發) 주주제안 안건들이 잇달아 부결됐다.

국내 증시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취약한 지배구조와 낮은 배당성향의 개선 기대감도 있었지만, 상당 주주는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이사회의 손을 들어줬다.

행동주의펀드의 패배는 일찍이 예견된 바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편승해 사외이사 선임, 배당확대, 자사주 매입 소각 등을 주장했지만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는 앞다퉈 주주제안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다. 

국민연금도 행동주의펀드가 아닌 이사회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의 기업가치 제고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주주환원 확대가 무조건 투자자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당 등 주주환원을 많이 하라고 하는 것이 기업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투자 여력을 잃어 오히려 미래 가치를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주주들도 이런 인식 아래 반대표를 행사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 22일 열린 금호석유화학 주주총회에서는 박찬구 회장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지분 9.1%)와 손잡고 참전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이 고배를 마셨다.

차파트너스는 △주총 결의만으로 자사주 소각할 수 있도록 정관 변경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 100% 소각 △사외이사 선임 등 주주제안을 내놨지만 단 1개의 안건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지난 15일 열린 삼성물산과 다올투자증권의 주총 역시 이사회의 완승으로 끝났다.

앞서 삼성물산은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 등 외국계 행동주의펀드 5곳과 주주환원 안건을 놓고 맞대결을 펼쳤다. 

이들 펀드는 보통주 1주당 현금 4500원, 우선주 1주당 4550원 등 현금배당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제출했으나 23% 지지에 그쳐 부결됐다.

국민연금이 보통주 1주당 2550원을 배당하는 이사회 안건을 채택한 영향이 컸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이익 배당 안건의 경우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더 부합하는 이사회 안에 찬성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행동주의펀드의 과도한 배당 요구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들이 요구한 현금배당은 환산 시 7364억원 규모로, 삼성물산의 여유자금(잉여현금흐름)을 100% 웃돈다.

보건복지부는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연금법 시행령’ 및 ‘기초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주총에서 캐스팅보드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연금. [사진=연합뉴스]

다올투자증권 주총에서도 최대주주 이병철 회장 측과 2대주주인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가 표대결을 펼친 결과 주주제안 안건 모두 부결 또는 자동폐기로 결정됐다. 

특히 ‘유상증자에 따른 자본금 확충의 건’은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주 공동의 이익에 반하는 제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소액주주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남은 주총에서도 행동주의펀드의 승리를 예측하는 목소리는 적다.

가장 이목을 끄는 주총은 오는 28일 예정된 KT&G와 JB금융이다. 양사는 각각 이사진 구성을 두고 표 싸움을 예고한 상태다.

이사진 9명 중 7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JB금융은 5명의 후보를 추천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에 대해 ‘이사회 독립성 훼손’을 주장하며 기존 이사 재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KT&G는 방경만 총괄부문장(수석부사장)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행동주의펀드와 첨예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당초 단일 최대주주(7.11%) IBK기업은행의 지지를 등에 업은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의 공세가 예고됐으나, 최근 이사회가 지분율 6.20%의 국민연금을 우군으로 확보하면서 반전을 꾀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주주행동주의 성공 요건으로 기업의 미래 비전에 대한 고심을 언급한다. 중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재무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무리한 요구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김대종 교수는 “주주행동주의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주주제안이) 기업의 정도 경영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장기적인 미래 비전 아래 기업이 잘못하는 부분을 꼬집어야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주행동주의가 이뤄질 때 그 기업의 주가는 오른다는 인식이 있다면 주주들의 동참을 이끌 수 있겠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몇 가지 성과를 좀 내고 반향을 일으키다가 끝났다”면서 “주주행동주의를 통해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그림이 나와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에선 총수 일가의 높은 지배력을 견제할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요구된다. 반면 산업계는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등 보완 장치 마련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행동주의펀드가 단기차익을 거둘 목적으로 무리한 배당 확대를 요구하거나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기업 성장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신주인수선택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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