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에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에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염보라 기자] “정부는 주주환원을 늘리라고 하고, 당국은 충당금을 먼저 쌓으라는데 난센스 아닌가요.”

정부와 당국의 상충된 주문에 정기 주주총회을 앞둔 금융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산업계 전반에 배당 기대가 높아졌지만,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진 금융권은 이도 저도 못하는 형국이 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 등에 대한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을 요구하며 배당자제령을 내렸다. 충당금을 충분히 쌓고, 남은 재원을 배당에 할당하라는 주문이다.

금감원의 현장검사 항목에는 ‘충실한 충당금 반영’ 여부도 포함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부동산 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더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호응해 주주환원을 확대하며 저평가된 금융주 가치 상승을 기대했지만, 충당금 압박은 걸림돌이다.

그나마 자본여력이 있는 은행권은 비교적 적극적인 배당 정책을 발표할 수 있지만, 생존싸움에 한창인 2금융권은 여력이 없다.

가뜩이나 실적 악화 부담이 큰 상황에서 충당금을 많이 쌓게 되면 배당 여력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일부 보험사와 증권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배당성향을 낮춘 역(逆) 밸류업안을 내놓기도 했다.

2금융권 관계자는 “우리는 권고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충당금을 넉넉히 쌓으면 그만큼 배당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면서 “밸류업 동참 의지가 현실에 의해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금융당국이 과도한 배당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2금융권의) 배당 여력은 제한적”이라면서 “당분간은 배당 가능 이익을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의도 전경.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전경. [사진=연합뉴스]

일찍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은 은행권도 속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사실 과거부터 똑같은 고민을 해왔지만, 지금은 고금리 장기화 국면을 거치며 각종 리스크가 산재해 있는 상황에 밸류업 이슈가 부각되며 충당금과 주주환원이 모두 중요해진 국면”이라면서 “어떤 걸 더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충당금과 관계가 없는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환원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주식 수 감소로 주주입장에선 배당과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서다.

은행권은 이미 수천억원 단위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힌 상태인 반면, 2금융권은 아직 소극적으로 대응 중이다.

이에 대해 한재준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충당금을 많이 쌓으면 그만큼 배당 여력이 줄어들지만,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면서 “다만 재무건전성 지표인 BIS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우려가 있어 (기업 입장에선) 난감하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밸류업의 목적을 단기적인 주주환원 확대에 국한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건전성이 먼저 확보돼야 장기적인 밸류업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 금융지주를 상대로 밸류업 캠페인을 펼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충분한 자본비율을 먼저 갖추고, 예상 손실에 대비해 충분한 대손충당금을 쌓고, 그 다음 배당을 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스탠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도 (당국과) 같은 입장”이라면서 “정부가 말하는 기업 밸류업은 지속 가능해야 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해야 할 부분으로,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은) 큰 틀에서 (밸류업에)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한재훈 교수도 “올해 과도하게 충당금 쌓았다면 다음 연도에 수익으로 환입되며, 다시 배당 여력이 늘어나는 구조”라면서 “올해는 과도하다고 불평할 수 있지만 계속 될 이야기는 아니다. 결과적으로 (주주환원 확대의) 큰 걸림돌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 교수는 은행권의 주주환원 확대가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요 은행은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 자칫 국부 유출이 될 수 있는 까닭이다. 한국거래소 공시에 따르면 국내 3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은 8일 오전 기준 △KB금융 75.33% △하나금융 70.23% △신한지주 61.32%에 달한다.

한 교수는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은행의 배당 확대 전략에는 부정적”이라면서 “차라리 충당금을 쌓고 상생금융을 늘리는 방향이 장기적으로 옳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