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대해 1심 재판부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아 재계에서는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논란 역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대법원이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승계작업 자체가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사법부의 형평성 원칙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협사합의 25-3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또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선 선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2015년 3월과 5월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양사의 합병 필요성과 장애사유 등 검토를 거친 점이 인정되고 양사 이사회의 실질적 검토에 따라 진행됐다고 봤다”면서 “경영권 강화, 승계만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는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합병의 주된 목적이 피고인(이재용)의 경영권 강화라고 단정할 수 없다. 검사는 이 사건 합병이 삼성물산과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와 더불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및 허위공시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 기소 후 3년 5개월 만에 무죄···재계 판결에 환영

이처럼 이 회장이 기소 후 3년 5개월 만에 1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먼저 재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글로벌 기업 삼성의 사법리스크가 해소돼 결과적으로 우리 수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내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번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과 오해들이 해소돼 다행”이라며 “삼성그룹은 그동안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상 불확실성을 벗어나 적극적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글로벌 첨단 기업 위축을 야기한 사법리스크 해소를 환영한다”면서 “통상적인 경영 활동 범위와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인정으로서 바람직한 판결”이라고 전했다.

반면 일부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단체에서는 면죄부를 줬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유감을 드러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그룹승계를 위한 뇌물제공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던 사법부가 해당 승계과정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가지고 사안을 판단한 것인지 의문스럽다”면서 “주주를 무시하는 재벌·대기업의 경영과 불투명한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물산 및 회계법인 등을 압수 수색하며 일벌백계하겠다던 윤석열, 한동훈 검사는 오늘 사법부 판단에 대해서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재벌들은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해 함부로 그룹 회사를 합병해도 된다는 괴이한 선례를 남긴 판결”이라며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날을 세웠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대한민국의 경제사법 정의가 무너졌다”면서 “일련의 과정을 보면 법원과 검찰은 이재용 회장의 소유지배 확립을 위한 30년 대서사시의 충실한 조연이었던 건 아닌지 참담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판결이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9년 8월 29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등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며 “최소비용으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권 강화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계작업을 진행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의 판단과 어긋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이) 선행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반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시민단체들은 “방대한 증거와 선행 판결을 두고도 무죄를 판단한 법원의 행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승계작업은 있었지만 그 자체로 법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도 없었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의아함을 드러내고 있어 향후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정치권 일부에서는 4월 총선에서 쟁점화돼 ‘재벌 봐주기’ 프레임에 갇힐 경우 여당 및 현 정권에게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이 회장, 과감한 대규모 투자로 ‘뉴삼성’ 구축에 힘

다만 경영계에서는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 족쇄를 풀게 되면서 그간 미뤄둔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나서 ‘이재용식 뉴삼성’ 구축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 회장으로서는 사법부의 큰 결단에 대규모 투자로 화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순현금은 79조69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그간 인공지능(AI)·디지털 헬스, 핀테크, 로봇, 전장 등 5개 분야에 소규모 투자를 진행해 왔지만 대형 M&A는 2017년 9조원을 투자한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었다.

이 회장은 앞서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2021년 8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어 이를 감안할 때 조만간 대형 투자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는 데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금 보유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그동안 제대로 된 투자를 못하고 현금을 쌓아뒀다는 얘기”라며 “그동안 보수적으로 운영해 왔다면 앞으로는 보다 과감하고 앞서가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관련 안건이 상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검찰 측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어 사법리스크를 해소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단 얘기도 들린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선고된 삼성물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회장 등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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