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덕형 기자] “뭐 어쩔 수 있겠습니까. 하라면 하는 거죠.”

한 한국전력 직원과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느 정도 직급을 달고 있는 그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임금 반납 동의’는 그저 20대 군 시절 형식적으로 토요일마다 소대장이 걷어가던 ‘소원수리서’와 다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과장급 이하 직원들의 동의율이 지난달 25일 동의 신청 기간 종료 기준 50%를 밑돌게 된 것이다.

MZ세대가 다르다는 말은 미디어를 통해 상식처럼 여겨진 지 오래지만 이번 한전 임금 반납 사건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행동으로 드러냈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보인다.

그저 위에서 시키면 해야 하는 줄 아는 세상을 아직 살고 있는 한전 경영진은 적지 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당황한 한전 경영진이 그들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고 ‘임금 반납 동의’ 기간을 연장하는 결정을 한 점이다.

어쩌면 더 강력하지만 조용히 동의율을 높이기 위한 사내 압박이 짙어질지 모른다.

문제는 더이상 대한민국이 라면만 먹고 뛰어도 정신력으로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던 시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전은 이미 그로기 상태다. 2020년 말 132조원이던 부채는 지난해 6월말 이미 201조원을 넘어섰다. 연간 이자 비용만 4조원 이상이다. 앞으로 한동안 영업이익은 모두 빚을 갚는 데 써야만 한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적자도 5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수치를 반영하면 적립 자본금은 15조원까지 줄어들고 올해 한전채 발행 한도는 75조원으로 줄어든다. 앞으로 한전채 추가 발행은커녕 당장 5조원 가량을 즉시 상환해야 할 판이다.

한전이 어차피 오는 3월 결산 후 받을 배당금을, 지난해 말 서둘러 발전자회사로부터 받아 내며 온갖 비난을 감수한 이유는 이런 절박함 때문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부채와 이자를 갚겠다고 일 년에 단 두 번 있는 설과 추석 명절 지원금을 없애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정신력을 강조하며 좋은 성적을 강요하던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MZ세대에겐 그저 자존감과 일할 의욕만 낮추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

한전 경영진은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겁게 느꼈을 수 있다. 또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있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전은 자기 식구를 귀하게 여기는 집안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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