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사진=한국경영자총협회]

[이뉴스투데이 김종현 기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여야 이견으로 유예 개정안이 무산돼 27일부터 본격 적용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가 유예 개정안을 믿다가 준비 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게 됐다. 다만 정치권에서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추가 유예안 처리 여지를 남기고 있어 변수는 남아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연장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의 경우 중대재해가 일어나 영세기업 대표가 구속된다면 그 기업은 무너지게 된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닌 만큼 재해 예방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하루 빨리 보완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또 “중대법에 의하면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는데 외국 투자기업의 임원이 (중대법 때문에) 한국을 오기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있다”면서 “너무 처벌 위주로 가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대법 적용 대상이 50인 미만으로 확대되면서 경영계를 중심으로 유예 및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경영계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2년 유예 기간이 있었지만 현실을 보니 중소기업은 안전관리자를 둘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데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확대 시행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유예에 대해 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측은 “더불어 민주당은 초선용 정치적 거래로 27일 시행 이후에도 법을 되돌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면서 “강력히 경고한다. 중대재해법 적용은 그 어떤 명분과 정치적 거래가 용납될 수 없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 경영계 “처벌만이 능사 아냐” vs 노동계 “정치적 거래 용납 못해”

중대법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논란 역시 확산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측은 야당이 추가 유예에 대해 일절 대화하지 않고 있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반면 야당 측에서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이 전제된다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2년의 유예기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준비가 안됐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동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고 “중대재해 대책 추진단을 출범시키겠다며 호들갑을 떠는 고용부의 브리핑은 결국 지난 2년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손 놓고 있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50인 미만 확대 적용이 현실화되면서 그 불똥이 고용부로 향하고 있다.

앞서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 개정안 처리가 무산되자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입법이 좌절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이에 중대법이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장은 아직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간 현장에서는 83만7000개 영세·중소기업의 열악한 여건과 부족한 준비 상황, 그곳에서 일하는 800만 근로자의 고용과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해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고용부가 유예 개정안만을 믿고 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어 논란 역시 확산되고 있다.

실제 중대법 확대 적용으로 인해 고용부에서 중대재해를 담당하는 인력·인프라 부족이 혼란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고용부는 중대법 확대 적용으로 인해 고용부가 담당할 중대재해 수사대상은 2.4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수사 업무는 포화 상태다. 특히 고용부가 수사를 맡아 검찰로 송치하거나 종결 처리한 사건은 34.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특히 고용부는 중대재해 수사 담당 감독관을 100명에서 133명으로 증원했어도 부족한 게 현실이라며 15명을 추가 배치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하지만 당장 고용부가 추진 중인 83만7000개의 50인 미만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산업안전 대진단’부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안전보건공단과 민간기관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산업안전감독관 전원(800명)이 대진단을 추진한다 해도 1인당 1000개 넘게 맡아야 한다.

이에 산업안전감독관들 안팎에서는 실효성 없는 ‘졸속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용부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해당년도 산업재해로 모두 644명이 숨졌는데 이 가운데 388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졌다. 이 가운데 숙박 및 음식점업에 종사하다 숨진 근로자는 5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1% 이하 수준이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19일 서울 명동 소재 음식점을 방문해 “음식점에서는 건설·제조업보다는 재해 사례가 많지 않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부담을 가질 수 있다”면서 “중대재해는 한 번이라도 발생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오므로 ‘방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 담당 수사관 부족 사태·엇갈린 조사결과 논란만 키워

또 국민의힘 정광재 대변인이 지난 27일 “50인 미만 사업장의 94%가 법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으며 2곳 중 1곳은 안전보건 업무를 맡을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게 안타깝지만 현장의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대재해전문가네트워크 공동대표인 권영구 변호사는 “지난해 3월 고용부가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곳을 조사한 결과 81%가 ‘안전보건 의무를 갖췄거나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며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말은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반문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같은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재계 및 여당을 중심으로 추가 유예안 상정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경총은 ‘중대재해 예방 지원센터(가칭)’를 운영할 계획이다. 중소기업 스스로 안전관리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고 정부와 협력사업 등을 추진해 중대재해 예방활동을 전개해나갈 방침이다. 대기업 차원의 지원도 추진된다. 경영계 주도로 정부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상생협력 우수모델을 발굴해 확산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재계는 추가 유예 법안 상정 및 보안 입법 추진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여당 측도 추가 유예 법안 통과를 위해 협상을 벌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중대법을 적용하면 소상공인과 고용된 근로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고 그 점에 대해선 민주당도 인정할 것”이라며 “중대법 유예안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 대표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기업들에 준비할 시간을 주어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아직 골든타임은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측은 중대법 유예 조건으로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2년 유예 기간 재정 지원 계획에 대한 답변을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양측 협상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미 법안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다시 추가 유예안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면서 “설명 유예안이 통과돼도 그 사이 중대재해 발생할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 등의 논란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관계자는 “재계 쪽에서도 유예기간 보다는 입법 보완을 통해 처벌 위주의 법안 내용을 예방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바꾸도록 개정안을 만드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며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자는 것이 아닌 법 취지에 맞춘 촘촘한 안전장치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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