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학창시절부터 수족관을 운영하는, ‘물생활’이라는 취미를 10년 넘게 이어왔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조언을 부탁할 때가 많았다. 관리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장비를 추천해주면 대부분의 입문자들은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그보다 훨씬 저렴한 용품을 선택했다. 그러고 얼마 뒤 관리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고가 장비를 구매하기 일쑤였다.

최근 취재를 통해 바이오 R&D 예산이 삭감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부가 이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5일 ‘2024년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시행계획’을 확정했다. 그 결과 올해 바이오 원천기술 개발 투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173억원이 줄어든 5421억원으로 나타났다.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겉으로 봤을 때 정부는 바이오를 핵심산업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 5일 과학기술계 신년인사회에서 윤 대통령은 바이오를 AI·양자와 함께 3대 미래 전략기술로 지정하면서 임기 중 R&D 예산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R&D에는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게 그의 발언이었다.

그런데 열흘 뒤 발표된 바이오 R&D 예산이 깎인 것이다. 결국 최근 대통령 발언과 달리 지난해 정부가 보여 온 R&D 축소 기조가 계속된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R&D를 경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마치 ‘당장 성과물도 없으면서 돈만 많이 나가는 것’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연이어 나타난 이번 삭감은 그간의 근시안적 관점이 여전히 유지된 것으로 해석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이는 중국의 행보와 대비를 이뤘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산업을 키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가핵심연구개발계획, 전략적 신생사업 계획 등과 더불어 바이오 경제 특화 5개년 육성계획 등을 발표하며 성장 의지를 내비쳤다.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은 최근 연이어 미국 FDA에서 바이오의약품 허가를 얻어냈다.

취재 과정에서 느낀 의아한 심정은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업계 관계자들도 정부의 R&D를 향한 근시안적 기조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윤 대통령이 R&D 예산을 제고하겠다는 발언을 한 이후라 이들에게는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는 게 이들의 속내였다.

실제로 이는 업계 위축으로 이어질 전조가 나타나는 모양새다. 어쩌면 이미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실제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자사의 연구개발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밝힌 응답자가 전체의 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싼 물건은 싼 이유가 있는 법이다. R&D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또 바이오 산업이라고 해서 이를 피해갈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연구개발에 오랜 기간 공들여야 하는 대신, 그 하나의 신약이 블록버스터급이 될 수 있는 산업 특성을 고려했을 때 지금과 같은 정부의 기조는 업계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축구계에는 ‘비싼 선수가 제일 싸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몸값의 선수를 영입했다 후회하고 다시 영입에 나설 바에는 처음부터 비싼 선수를 영입해 그에 상응하는 성적을 거두는 게 싸게 친다는 의미다. 바이오 산업도 중국에게 따라잡힌 뒤라면 원래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근시안적 관점을 거두고 보다 멀리 내다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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