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아끼면서도 가장 자주 매는 가방이 있다. 언젠가부터 실밥이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해 보이는 족족 그 실밥을 뽑았다. 그러다 한 달 전쯤 그 가방의 판매처에 들른 김에 증상을 얘기했다. 그러자 직원이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한 올씩 뽑다보면 그 자리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직원의 경고는 최근 취재거리 중 하나였던 간호사와 간호법을 떠올리게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실밥 한 올이 빠지고 빠지다 보면 구멍이 날 수 있듯이 최근 지속되고 있는 간호사 유출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 한다면 이것이 의료공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와 연결된 것이다.

그동안 취재를 통해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현장의 목소리를 접해온 바 있다. 간호사들은 줄곧 근무여건을 개선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흘러갔다. 특히 지난 11월 6일 발의된 ‘의료법 일부개정령안’은 그동안 쌓여왔던 간호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

당시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등 10인은 해당 개정안의 제안사유로 “간호대학생의 의료행위 가능행위에 준해 간호조무사 교육훈련생도 실습교육 시 의사의 엄격한 지도하에 실습교육이 가능하도록 하고자 함”이라고 제시했다.

이것이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움직임으로 해석된 것이다. 물론 이는 단순 발의로서 제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간호사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초기부터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였다.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예민하게 반응할 만하다고 생각됐다. 이같은 발의는 간호법 제정이 계속해서 무산되는 가운데 그동안 요구해왔던 근무환경의 질적 개선 대신 머릿수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납득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간호사들의 목소리는 늘 근무여건의 질적 향상을 향해 있었는데 이런 시각 차이를 보이니 말이다. 이것이 정말 몰라서 나온 판단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의구심조차 품게 되는 순간이었다.

간호선진국들의 행보를 조금만 둘러봐도 이같은 판단을 내릴 순 없었을 것이란 아쉬움도 들었다. 최근 대한간호협회 100주년을 맞아 일본과 유럽에서 간호협회 관계자들이 방한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각국은 갈수록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경계를 뚜렷이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방침을 공유했다. 결국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 때문일까, 간호인력의 유출은 연일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년간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간호사만 해도 8350명에 달했다고 한다. 과거 ‘간호부’들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파독’됐었다면, 이제는 열악한 근무여건에서 버티지 못 한 ‘간호사’들이 ‘개개인의 생존’을 위해 해외로 떠밀리듯 떠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간호법이 제정돼야 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 이유다.

매년 수많은 간호대 학생들이 신규 간호사로 배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의 조기퇴사가 반복되고 간호인력에 공백이 발생하는 현 상황은 질적 개선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양적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진작 해결될 노릇이었다.

그날 가방을 살펴봐주던 직원은 “한번 생긴 구멍은 복구하기 어렵고 많은 비용이 소모돼 차라리 새로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면서 “앞으로는 절대 실밥을 뽑지 말고 겉면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었다. 이렇듯 간호인력 유출은 머릿수로 때우려는 시도가 아닌 간호법을 통해 실질적인 질적 개선을 도모해야 본질을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이 더 큰 구멍을 막는 길이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