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유은주 기자] 연일 영화 ‘서울의 봄’ 이야기로 세상이 시끄럽다. 영화는 답답한 세상살이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못 해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일에 대해 엄중하고도 담담하게 목소리를 전한다. 

‘서울의 봄’이란 제목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기를 일컫는 ‘프라하의 봄’에서 왔다. 19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 쿠테타를 배경으로 한다. 이에 대한 다양한 평 중 공통적으로 꼽히는 의견이 있다. 

‘그날 그 순간에 다른 결정을 했었더라면, 우리는 달라졌을까’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가정법을 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날들은 언제나 한참이 지난 후로 촉각을 다투는 골든타임을 꽤 멀리 지나온 뒤다. 

이는 최근 과학기술 R&D 정책 개편 관련 후회의 시기가 오지 않길 바라는 간곡한 당부와 염려가 이어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과학기술 R&D 예산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차세대 연구자들을 육성할 수 없고 이어져오던 연구의 대가 끊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되돌이킬 기회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정책변화 현황에 대해 되묻기도 했다.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움이나 분노를 담아서다. 자신이 평생을 다해 열정을 바친 학문에 대한 예의와 함께, 자신들의 입장이나 이야기를 대신 전해달라고도 덧붙였다. 

자조섞인 목소리도 있다. 이미 과학은 끝났다면서 말이다. 연구실의 규모와 과제 수가 줄어들면 당장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다는 이들도 있다. 학부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학업능력을 인정받아 학문을 향한 열정으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일부는 수재들만 간다는 국가 출연연구기관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린 건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불투명한 내일이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R&D 혁신방안’과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위해 실패와 성공보다는 과정을 평가한다는 정책이다.  

눈여겨볼 점은 도전 혁신 견인 제도를 철저히 ‘연구자의 입장’에서 개혁한다는 것이다. 관리자 중심제도와 규제를 없애는 게 골자다. 그러나 현재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집단은 관리자에 가까운 정부 정책 관료들이다. 정책을 정하는 데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목소리다. 

특히 ‘실패’를 용인하겠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도전적인 연구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후속과제 선정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한다는 슬로건을 담았다.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 평가등급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놓고 혁신도전과제를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기준이란 매우 주관적일 수 있기에 정량적이고 객관화된 수치가 아닌 그야말로 혁신적인 ‘기준’ 마련이 절실하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글로벌’이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최고 연구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소규모 단발성 국제협력이 아닌 해외진출을 늘려 향후 3년간 5.4조원 이상 예산을 투입한다. 상대국의 상황에 맞춘 유연한 예산운영도 지원한다. 

그러나 학계의 입장은 다르다. 도대체 정부가 말하는 ‘글로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기존에도 연구자들은 국제 공동연구를 활성화해 왔고, 국내 논문의 30% 이상은 해외협력을 통해 주저자 점유율 50%가 넘는 성과를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강제된 국제화’가 오히려 본연의 목적을 흐리는 비효율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공동연구 시 발생할 기술패권 보호 안전장치도 부재하다. ‘누구를 위한 글로벌 연구인가’ 의문이 지속되는 가운데 향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주목을 받는 영화가 그렇듯 그날 그 순간에 다른 결정을 했었더라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이 명제에 대해 이미 여러 번 학습해 왔다. 과연 빼앗긴 들에도 과학의 봄은 올 수 있을까. 어쩌면 그 해답은 ‘아직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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