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승준 기자] 작은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던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하는 곤충채집은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학교까지 채집도구를 챙기기는 쉽지 않았다. 이럴 때 곤충을 채집하는 방법은 음지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곤충채집을 즐기던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채집도구를 챙기지 않았다. 음지를 노리는 것이 곤충을 편하게 채집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큰 바위나 타이어, 나무둥치, 벽돌 등을 들추면 안에 숨어 있던 곤충들을 쉽게 발견하고 채집할 수 있었다.

나중에 도감을 읽으면서 곤충들은 그런 곳을 포식자로부터의 은신처로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올해 10월, 취재 과정에서 학창시절의 곤충채집 경험이 떠오르게끔 하는 기삿거리가 하나 생겼다. 스테로이드 구매자 처벌 이슈가 바로 그것이다.

단백동화(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약물은 골격근의 수용체를 증가시킴으로써 근육 합성을 촉진한다. 운동을 하지 않고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사람이 운동을 한 사람보다 더 많은 근육량을 얻는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많은 보디빌더와 파워리프터들이 스테로이드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다.

스테로이드는 특히 2019년 한 헬스 유튜버의 ‘약투 운동’에 의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이를 기점으로, 몸을 빠르게 키울 수 있지만 여러 부작용이 존재해 사용이 불법이라는 점도 함께 이슈화됐다. 대중들이 보디빌더들의 스테로이드 사용 여부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스테로이드 사용의 위험성이 부상하자 법적 공백도 조명됐다. 그동안 법에는 스테로이드 판매자만 처벌하도록 명시돼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구매자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이 대두되던 가운데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지난해 7월 21일, 구매자에 대해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해당 시점부터 취재 시작 직후까지 스테로이드 구매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는 없었다. 이에 구매자 처벌에 대한 개정 소식을 보도자료로 배포한 식약처에 구매자 처벌 현황을 문의했다. 그 결과 처벌과 단속은 식약처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보건복지부에 문의해도 마땅한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 수차례의 문의를 거친 끝에 스테로이드 구매자에 대한 처벌과 단속은 지자체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시청에 문의한 결과 시 단위도 아닌 각 구에 속한 보건소에서 이를 맡고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식약처에서 판매자에 대해서는 단속도 적극적으로 하고, 관련해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구매자 처벌·단속·현황은 각 구별로 보건소에서 문의해서 하나하나 취합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현황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스테로이드 구매자들의 행보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더욱 체감하게 만들었다. 당장 유튜브만 둘러봐도 스테로이드 구매자들의 ‘약밍아웃’을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스태킹’(약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용량을 늘리거나 혼용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유튜버도 등장했다.

이렇게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인해 ‘로이더’(스테로이더의 준말, 스테로이드 사용자를 지칭)들이 대놓고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모습은 마치 포식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음지에 모여 있는 곤충들을 발견했던 학창시절이 연상됐다.

개정 후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단속 현황조차 제대로 확인돼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스테로이드 사용자들이 버젓이 온라인상으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처벌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동시에 처음부터 법안 개정 시 책임 소재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개정할 때부터 담당 기관을 식약처로 정했다면 이처럼 혼선을 빚지도 않았을 일이다. 스테로이드 구매자 관련 민원 제기 시 식약처에서 답변을 하는 점도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들었다.

이는 개정된 법안이 의미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구 단위의 보건소가 아닌 상위 기관에서 구매자의 단속과 처벌 현황을 아우를 수 있는 집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포식자가 도사리는 양지에 곤충들이 모여 있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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