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주거지 전경. [사진=이뉴스투데이DB]
서울 성북구 주거지 전경. [사진=이뉴스투데이DB]

[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치솟고 있는 원자재 가격과 건설업계의 원가율 악화가 겹치면서 전국 재개발·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저가 공사의 난립으로 건설업계가 사업 수주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유찰을 면치 못하는 현장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미 공사가 시작된 현장에서는 공사비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등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반면 조합과 업계 간의 첨예한 갈등에도 주택시장의 하락세로 수익이 급감한 일부 건설사들이 사후 공사비 인상을 노리고 무분별하게 수주에 나서는 출혈경쟁 현상마저 나타남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건설사들의 수익성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1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51.26으로, 3년 전(118.10) 대비 약 28% 증가했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건설사들의 원가율이 곤두박질치며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증액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는 공사 현장이 늘고 있다. 치솟는 공사비에 정비사업 수익성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건설사들 사이에 수주를 포기하는 경향이 짙어진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 기조 지속으로 건설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일부 현장에서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단독 응찰 혹은 무응찰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제29조(계약의 방법 및 시공자 선정)에 따라 정비사업 시공사를 선정할 때 한 곳의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하면 유찰되기 때문에 사실상 유찰 현장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시공사 선정 입찰이 2회 이상 유찰되면 정비사업 조합은 단독 입찰한 건설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여의도 공작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입찰에서 대우건설이 단독 응찰해 결국 유찰됐으며, 부산 부산진구 시민공원 촉진2-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과 서울 성동구 응봉1구역 재건축 조합도 이달 입찰 마감 결과 유찰을 면치 못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대외적인 상황이 안정되기 전까지 건설사들은 보수적인 수주 전략을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원자재 수급 불안과 고금리 기조가 여전한 상황에서 PF 부담 등의 상황을 감안해 수주량을 조정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공사비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각종 갈등 사례들이 급증하고 있다.

1070가구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노원구 월계동신 조합의 경우 사업 추진의 차질을 이유로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조합은 지난해 3.3㎡당 540만원에 계약한 공사비가 특화설계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667만원까지 오르자 조합원이 사업 지연을 이유로 조합장 해임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합 측은 지난 28일 총회를 열고 조합장 해임 안건을 상정했지만 전체 조합원 818명 중 346명이 찬성하면서 부결됐다.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산정 갈등도 급증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정비사업 추진 중인 조합이 공사비 적정 여부 검증을 요청한 사례는 총 23건으로, 제도 도입 이후 관련 문의의 증가세가 매년 큰 폭으로 가팔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사비 검증 요청 사례가 증가한 원인에는 물가 상승, 설계 변경 등의 이유로 공사비 상향이 이뤄짐에 따라 조합과 시공사 간의 의견차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조합 입장에서는 사업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금융비용이 크게 상승하게 돼 총비용이 늘어나게 되고, 시공사 입장에서는 공사비를 올리지 못한다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어 양측간 갈등이 불가피한 것이다.

경기 성남시 산성구역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도 공사비 검증을 요청해 결과를 받았지만, 여전히 시공사업단과 공사비 증액 규모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조합과 시공사 간 법적 분쟁으로 확산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최근 동작구 사당 3구역 재개발 조합과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공사대금 지급건을 놓고 소송을 진행, 해당 소송에서 조합 측이 패소하며 공사비 잔액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부산에서는 레이카운티 시공사업단(삼성물산·DL이앤씨·HDC현대산업개발)이 이달 초 조합 측에 지하공사비 약 524억원에 대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별도로 HDC현대산업개발은 3단지 PIT 상가 등과 관련 약 235억원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사태가 격화되자 정부가 공급대책을 통해 ‘민간 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 등의 개선안을 추진해 공사비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정비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강제성이 없는 조항에다 앞서 갈등이 빚어져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대형 사업지를 대상으로는 효력을 보일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대기업 건설사 관계자는 “세계정세의 영향 등 공급 문제가 지속되면서 자재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연말을 기점으로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전국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잡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증액 기준과 이를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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