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해리 기자] “아이구, 아이구! 어떡해, 어떡해….”

국산 브랜드 전기차를 구매한 지 한 달, 집 앞을 나선 한 아들의 어머니의 탄식과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만이 자동차 블랙박스 스피커를 가득 메웠다. 철컥 철컥 아무리 눌러도 말을 듣지 않던 차는 500여m를 역주한 끝에 도로 옆 가로수를 들이받고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평생 가져야 할 어머니의 사고 트라우마를 지켜보는 아들의 심경은 참담했다. 주변에서는 모두 차량 급발진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당한 보상은커녕 회사 측에선 위로 한마디 전하지 않았다. ‘제조사 책임 건수 0’. 이들 모자 역시 지난 40년간 그랬듯 ‘자동차 모델 하자에 따른 급발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더 큰 고통은 사고 뒤에 찾아왔다. 유튜브와 교통사고 블랙박스 리뷰 채널에 영상이 올라가자 어머니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다는 이유로 “또 노인 교통사고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액셀레이터를 밟아댄 거 아니냐”, “급발진 사고는 왜 노인 운전자에게만 일어나나” 등의 조롱을 그대로 감수해야만 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자들의 서사는 대체로 비슷하다. 본인 과실 없이 평생 트라우마를 가질 큰 교통사고를 당했음에도, 제조사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건 “사고 이유가 자동차에 있음을 사고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간 급발진 의심 사고는 766건으로, 연평균 55건이 넘는다. 이 중 급발진 인정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소비자가 거대한 제조사를 상대로 기계적 결함을 증명해 내야 하는 구조부터가 불리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다. 이런 기형적 구조 안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 당사자와 가족들은 무기력감에 빠진다. 어차피 지는 싸움, 억울한 마음과 정부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해질 터다.

그러나 해외선 같은 급발진 의심 사고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아니, 반대다. 사고 시, 자동차의 문제가 아님을 제조사에서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소비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생명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두는 바람직한 자세다.

앞으로 급발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전기차 전환 때문이다. 개발 과정이 짧은 반면, 급전환 전개 단계인 전기차는 완성도 등의 원인으로 화재, 방전, 주행 오류 등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단골 이슈는 벌써 ‘급발진’이 됐다. 특히 순식간에 폭발적 주행이 가능한 가속감은 내연기관차 때와는 수준이 다른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사고 건수 통계, 정확한 원인 분석 등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다. 전기차 확장 속도에 비해 안전사고 대비는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모 지자체에선 ‘급발진 피해자 지원’ 조례를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피해 지원보다 더 시급한 건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원인 분석이다. 십수년 간 ‘급발진 사고 인정 건수 0건’의 의미는 다름 아닌 ‘정부’다. 수 천만원을 지불하고서도 목숨을 걸고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차량을 몰고 다니는 국민이 마지막으로 바라볼 곳은 ‘정부’ 뿐이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